“미국이 강력한 수요 중심 경제로 바뀌면서 V자형으로 회복하기 시작했다.”(티머시 피오레 ISM 위원장)
작년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억눌렸던 소비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미 제조업 경기가 단번에 살아나고 있다. 공장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화물 컨테이너 부족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전형적인 초과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백신·부양책의 ‘쌍끌이’ 효과
지난 12개월간의 미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 평균은 55.3이다. 지난달 기록한 64.7은 2월(60.8)보다 높은 것은 물론 평균치와 비교하면 9.4포인트나 차이 난다. 공장 주문(3.2포인트)과 생산(4.9포인트), 고용(5.2포인트) 등이 전달 대비 한꺼번에 늘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식당에서 화학회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요 산업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일제히 구매에 나서는 소비자들이 경기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미국 수입 물동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로스앤젤레스(LA) 항구가 심각한 병목현상을 빚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LA 항구엔 지난 2월 177척의 대형 화물선과 80만여 개의 컨테이너가 도착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31%, 49% 급증한 수치다. 지금도 LA 항구엔 40여 척이 하역을 기다리고 있다. 종전까지 당일 이뤄지던 하역작업이 최근 들어 5일 이상으로 길어졌다고 WSJ는 전했다.
백신 공급 확대로 소비자들의 경제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게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 접종률은 1일(현지시간) 기준으로 인구 대비 30%를 넘어섰다. 지금 속도라면 6월께 집단 면역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카드 사용액 40% 늘어
대규모 부양책 역시 소비를 진작시킨 원동력 중 하나다. 미 정부는 작년 말 9000억달러에 이어 지난달 1조9000억달러의 부양책을 시행했다.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집계 결과 지난달 27일 기준 직전 7일간의 신용·직불카드 사용액이 작년 동기 대비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1400달러의 부양 자금을 받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부양 자금이 저축 계좌로만 흘러들어가지 않고 소비 확대에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 중앙은행(Fed)이 통화정책의 핵심 변수로 삼고 있는 고용도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비농업 부문 일자리는 91만6000개 늘어났다. 시장 예상치(67만5000개)를 크게 웃돌았을 뿐만 아니라 지난 2월(37만9000건)과 비교해 대규모 증가세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2월 6.2%에서 3월에는 6.0%로 0.2%포인트 하락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직후였던 작년 4월의 14.8%와 비교하면 대폭 떨어진 수치다. 리서치 회사인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마이클 피어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노동시장의 회복세가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고용 회복세는 갈수록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2조3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해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계획이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류난까지…더 커진 인플레 우려
경기 호전과 함께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작년 팬데믹 충격에 따른 기저효과까지 겹치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갈수록 커질 것이란 지적이다. Fed가 수차례 예견한 것과 달리 물가상승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번 ISM 조사에서 제조업체들이 지난달 지급한 총비용(원가)은 2008년 7월 이후 최대 수준으로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공급망 악화 역시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다. 현재 미국의 상당수 제조업체는 원자재 및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료·부품을 대는 신흥국의 공장 가동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물류망도 정상 가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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