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정명훈(68·사진)이 모처럼 피아노 독주를 선사한다. 이달 23일 대구를 시작으로 경기 군포(24일), 수원(27일)을 거쳐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 여행을 마무리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60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0번’, 브람스의 ‘세 개의 간주곡’과 ‘네 개의 피아노 소품곡’을 들려준다. 이달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발매할 독집 음반에 실린 곡들이다.
정명훈의 피아노 독주회는 7년 만이다. 2013년 발매한 첫 피아노 독주 앨범 ‘정명훈, 피아노’를 알리기 위해 이듬해 독주회를 열었다. 당시 음반에는 가족들에게 헌사하는 작품을 실었다. 동요 ‘반짝반짝 작은별’로 귀에 익은 모차르트의 ‘작은별 변주곡’과 드뷔시의 ‘달빛’은 손주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골랐다. 쇼팽의 ‘야상곡 올림c단조’는 누나 정경화에게 바치는 곡이었고, 슈베르트의 ‘즉흥곡 G장조’는 막내아들 결혼식에서 연주했던 작품이다.
이번 음반에서는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했다. 인생을 회고하며 얻은 통찰을 피아노 곡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연주한 곡들은 작곡가가 만년에 썼던 작품이다. 베토벤은 청각을 상실한 후 50대가 넘어 피아노 소나타 30번을 썼다. 하이든과 브람스도 60대에 접어든 후에 피아노 소나타와 간주곡 등을 작곡했다. 정명훈은 “음악을 통해 인생의 여러 단면을 선보이고 싶었다. 개인적인 열망을 담은 것”이라며 “음반에 실린 레퍼토리를 통해 인생은 아름다운 여정이란 걸 느꼈다”고 설명했다.
70대를 앞두고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계기는 코로나19였다. 평소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을 돌며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그는 감염병 탓에 공연이 취소되자 피아노를 연주하며 1년을 보냈다. 오랜만에 연주한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독주회까지 열게 된 것이다.
지휘자로 유명한 정명훈은 피아니스트로서도 명성이 높다.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 한국인으로선 처음 거둔 성과였다. 지휘자로 방향을 튼 이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를 거쳐 1989년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단 음악감독을 맡았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등 세계 명문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이번 공연은 지휘 요청이 많아 협연 정도에 그쳤던 그의 피아노 연주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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