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와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은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비상식적인 부당 공시 사례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거대여당 소속인 이춘희 세종시장까지 공시가격 하향조정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공시가 산정의 부당성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큰지 가늠해볼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례만 봐도 기가 막힌다. 서초구에서는 실거래가 12억원인 아파트 공시가가 15억원으로 산정됐다. 지난해 거래된 4000여 건을 검증해보니 공시가가 실거래가를 넘어선 사례가 3%에 달했다. 제주도에선 같은 단지에서도 어떤 동(棟)은 공시가가 30% 올랐는데 옆 동은 내린 사례가 확인됐다. 고가 아파트만의 문제도 아니다. 임대아파트 공시가가 50% 이상 급등해 같은 단지 일반분양 아파트를 웃도는 등 오류는 빌라나 소형·저가 서민주택에서 더 많이 목격되고 있다.
불만이 폭주하자 정부는 공시가를 확정 발표(29일)할 때 처음으로 산정 근거도 같이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진일보한 태도이지만 숙박시설(펜션)을 공동주택으로 분류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속출한 상황에서 혹여라도 어설픈 기준을 제시해 어물쩍 넘길 생각이라면 접어야 할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작년처럼 정부가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는 것이다. 지난해 3만7410건의 이의신청 중 수용된 것은 915건으로 2.4%에 불과했다. 예년 수용률(2018년 28.1%, 2019년 21.5%)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알아서 매기고 있으니 잔말 말고 내라’는 식의 밀어붙이기가 통할 단계가 아니다. ‘엿장수 마음대로’ ‘세금이 아니라 갈취’ ‘가렴주구’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을 인용해 ‘작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3.01%’라고 강변하던 정부가 공시가만 급등시키는 행태에 분통을 터뜨리는 국민이 부지기수다. 미실현 소득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서 현실화율을 9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부터 조세법률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이는 국회 권한 침해에 해당하는 만큼 여당이 서둘러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공시가 인상 속도조절’을,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정부와 협의’를 언급했다. 이런 말들이 또 선거용으로 판명난다면 그때는 ‘세금 폭동’ 사태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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