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탈 많은 '깜깜이 공시가격', 즉각 보완 필요하다

입력 2021-04-05 17:44   수정 2021-04-06 00:11

14년 만에 최대폭(19.08%)으로 인상된 공동주택 공시가격 관련 이의 제기(의견제출)가 폭주하고 있다. 예년엔 서울 강남권이 반발을 주도했는데, 올해는 강북권은 물론이고 세종 부산 대전 인천 등 전국적으로 반발이 커지는 모습이다. 2018년 1290건이던 이의 제기가 2019년 2만8735건, 2020년 3만7410건으로 폭증한 데 이어 올해는 역대 최고기록(2007년 5만6355건)도 훌쩍 넘어설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원희룡 제주지사와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은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비상식적인 부당 공시 사례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거대여당 소속인 이춘희 세종시장까지 공시가격 하향조정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공시가 산정의 부당성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큰지 가늠해볼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례만 봐도 기가 막힌다. 서초구에서는 실거래가 12억원인 아파트 공시가가 15억원으로 산정됐다. 지난해 거래된 4000여 건을 검증해보니 공시가가 실거래가를 넘어선 사례가 3%에 달했다. 제주도에선 같은 단지에서도 어떤 동(棟)은 공시가가 30% 올랐는데 옆 동은 내린 사례가 확인됐다. 고가 아파트만의 문제도 아니다. 임대아파트 공시가가 50% 이상 급등해 같은 단지 일반분양 아파트를 웃도는 등 오류는 빌라나 소형·저가 서민주택에서 더 많이 목격되고 있다.

불만이 폭주하자 정부는 공시가를 확정 발표(29일)할 때 처음으로 산정 근거도 같이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진일보한 태도이지만 숙박시설(펜션)을 공동주택으로 분류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속출한 상황에서 혹여라도 어설픈 기준을 제시해 어물쩍 넘길 생각이라면 접어야 할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작년처럼 정부가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는 것이다. 지난해 3만7410건의 이의신청 중 수용된 것은 915건으로 2.4%에 불과했다. 예년 수용률(2018년 28.1%, 2019년 21.5%)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알아서 매기고 있으니 잔말 말고 내라’는 식의 밀어붙이기가 통할 단계가 아니다. ‘엿장수 마음대로’ ‘세금이 아니라 갈취’ ‘가렴주구’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을 인용해 ‘작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3.01%’라고 강변하던 정부가 공시가만 급등시키는 행태에 분통을 터뜨리는 국민이 부지기수다. 미실현 소득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서 현실화율을 9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부터 조세법률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이는 국회 권한 침해에 해당하는 만큼 여당이 서둘러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공시가 인상 속도조절’을,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정부와 협의’를 언급했다. 이런 말들이 또 선거용으로 판명난다면 그때는 ‘세금 폭동’ 사태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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