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임금협상은 비교적 순조롭게 타결됐다. 11년 만의 기본급 동결이었지만, 노동조합의 파업 없이 마무리됐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합의안은 기본급 동결(호봉 승급분 제외)과 성과금 150%, 코로나19 극복 격려금 120만원, 우리사주 10주, 전통시장 상품권 20만원 등을 담고 있다. 현대차 노조원 약 5만명 중 절반이 넘는 52.8%가 찬성했다.
그러나 사업장별 투표 결과를 뜯어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울산, 아산, 전주 등 공장의 기술직과 정비직 등의 찬성률은 60~70%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남양연구소 연구직은 거의 전원이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남양연구소 직원은 약 1만2000명 정도인데,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노조원은 그 절반인 6000명 수준이다. 과거 직급 기준으로 '대리' 이하인 이들이 전원 반대표를 던져 전체 찬성률을 50% 초반대로 끌어내린 것이다.
기술직, 정비직은 1990년대에 입사해 근속연수가 20~30년에 달하는 직원이 상당수다. 이들은 근속연수에 따른 호봉 승급으로 인해 이미 기본급이 상당 수준에 달해 있다. 기본급이 동결되는 것은 아쉽지만, 노조 집행부가 사실상 정년 1년 연장 효과를 갖는 '시니어 촉탁 배치' 문제를 해결하면서 대거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반면, 연구직 중 투표권을 가진 직원들은 2010년대에 입사해 근속연수가 10년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기본급이 비교적 낮다. 따라서 성과금이 더 우선이다. 그러나 성과금이 전년보다 더 줄었으니 모두 반대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금액은 해가 갈수록 줄었다. 성과금은 2014년 450%, 2016년 350%, 2018년 250%, 2020년 150%로 감소했다. 격려금도 마찬가지다. 2014년 870만원, 2016년 330만원, 2018년 280만원, 2020년 120만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기준 성과금과 격려금을 합쳐도 700만원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2010년대 입사한 현대차 연구직은 갈수록 연봉이 깎이는 것과 같은 비슷한 상황이 된 것이다.
연구직은 결국 폭발했다. 사무·연구직 노조를 따로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사무·연구직 노조 설립을 위해 최근 개설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현대차·기아의 직원들을 비롯해 계열사 직원까지 2000명이 넘는 인원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현대차의 영업이익이 갈수록 줄어든 만큼 성과금이 감소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2012년 8조원대였던 영업이익은 계속 줄어 지난해 2조원대로 추락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 역시 10%대에서 2%대로 쪼그라들었다.
생산직 위주의 노조는 황당하는 반응도 많다. 그동안 생산직 노조가 힘들게 따온 과실은 같이 누려놓고, 이제와서 불만을 터뜨린다는 것이다.
이 경우 연구직 노조는 다시 기존 생산직 노조와 교섭 창구를 합쳐야 한다. 기존 생산직 노조와 협상을 통해 교섭위원에 연구직 노조원을 포함시킬 수 있지만, 기존 생산직 노조가 거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연구직 노조는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연구직 노조 역시 자기 밥그릇을 챙기려는 것은 결국 생산직 노조와 같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생산직 노조는 국민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연구직 노조가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면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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