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안전한 공기 살균제'란 미신

입력 2021-04-07 16:56   수정 2021-04-08 00:14

실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말끔하게 제거해준다는 공기 살균·소독제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모양이다. 살균제를 뿌려주는 스프레이도 있고, 자외선·아크방전·전기분해를 이용해 살균제를 만들어주는 전자제품도 있다. 모든 공기 살균 제품이 인체 안전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살균제는 인체 흡입과 섭취가 금지된 물질이다. 인체에 안전한 살균제는 기대할 수 없다. 오염된 실내 공기는 살균·소독이 아니라 환기가 원칙이고 상식이다.

살균·소독제의 원리는 간단하다. 단세포로 된 박테리아(세균)·바이러스·곰팡이 포자의 세포막이나 표피를 화학적으로 파괴해버린다. 당연히 그런 살균·소독제는 인체 세포도 파괴한다. 인체의 피부까지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강력한 살균력을 지닌 물질은 ‘방부제’라고 부른다. 포르말린 같은 방부제는 피부 접촉을 해선 안 된다.

독성이 훨씬 약한 이산화염소·오존·에탄올·하이드록실 라디칼과 같은 ‘범용(汎用) 살균·소독제’는 섭취·흡입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눈과 호흡기가 특히 위험하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살균제를 마시면 어떻겠느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기자회견 발언이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인체 섭취가 허용된 ‘보존제’와 ‘항생제’는 인체 독성이 훨씬 더 약하다. 그렇더라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은 철저하게 규제한다. 식품이나 생활화학제품에 넣을 수 있는 보존제는 예외 없이 ‘허용량’이 정해져 있다. 항생제 복용량은 환자 건강 상태에 따라 의사가 결정해준다. 그런 보존제·항생제도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호흡을 통한 흡입이 엄격하게 금지된다.

제조사가 강조하는 인체 안전성은 살균 성분 농도를 충분히 낮췄다는 뜻이다. 그런데 농도를 낮추면 살균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살균력은 농도에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살균력은 유지하면서 인체 독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명백한 자가당착이다.

낮은 농도의 살균·소독제에서 나타나는 만성 독성은 확인하기도 어렵다.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리적 특성에 따라서 인체에 나타나는 독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멀쩡한 살균·소독제가 나에겐 치명적인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다른 소비자의 경험이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1994년 ‘신생아에게도 안전하다’며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가습기 살균제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가습기 살균제는 살균은 물론 세척 기능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엉터리 제품이었고, 실제로 대부분 소비자에게 어떤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호흡기가 약한 노약자와 임산부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극미량의 살균 성분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폐섬유화·폐렴·천식 등의 치명적인 후유증을 일으켰다. 그런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은 가습기 살균제가 등장하고 18년이 지난 뒤였다. 완벽한 인체 안전성을 강조하던 제조사들은 지금도 순진한 소비자들에게 보상하기는커녕 피해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80년대 처음 등장했던 ‘음이온 공기청정기’도 마찬가지였다. ‘음이온’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생물과 독성 물질을 깨끗하게 제거해준다는 제조사의 주장은 믿을 것이 아니었다. 제조사가 자랑하던 ‘음이온’은 사실 아크방전으로 만든 오존이었다. 오존 때문에 발생한 호흡기의 치명적인 손상으로 목숨을 잃어버린 피해자도 적지 않았다. 2005년에야 밝혀진 사실이었다. 오늘날 모든 에어컨과 공기청정기에 붙어 있던 엉터리 음이온 기능이 사라져버린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환기가 실내 공기 중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가장 확실하고 상식적인 방법이다. 환기가 어려울 때는 가장 단순한 기능의 공기청정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사람이 생활하는 실내 공기의 ‘살균’은 일반 소비자가 섣불리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어설픈 과학을 앞세워서 인체 안전성을 강조하는 공기 살균·소독제 광고는 절대 믿지 말아야 한다. 이미 생활화된 마스크가 엉터리 공기 살균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역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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