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가치는 과연 존재하는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지난달 말 출간한 신작 《클라라와 태양》(민음사)을 통해 던지는 질문이다.
이시구로는 7일 신작 출간에 즈음해 국내 매체들과 가진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 “오늘날 AI와 유전자 편집 분야의 기술 발전은 이미 소설에서 표현한 것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복제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은 2005년작 《나를 보내지 마》를 쓸 때는 SF(공상과학)소설을 염두에 뒀지만 이번 작품에선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관련 논문과 책을 읽고 과학자들의 콘퍼런스와 세미나에도 참석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1954년 일본에서 태어나 1960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현재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1989년 《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신작의 주인공 클라라는 뛰어난 지능을 갖추고 있지만 갓난아기처럼 순진무구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호기심 많은 AI로봇이다. 그는 “기계를 주인공으로 택함으로써 인간 화자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었다”며 “‘우리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AI의 발전이 불러올 미래를 긍정적으로만 여기지는 않습니다. AI 기술의 발전이 민주주의를 저해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생각해요. 권위주의적인 독재정권이 AI 기술을 활용해 민주주의를 도입하지 않고도 경제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뤄낼 수 있다면 전 세계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비밀경찰이 필요없을 정도로 감시체계가 훨씬 더 쉽고 정교해질 수 있으니까요.”
이시구로는 오늘날 세계 주요 국가들이 겪고 있는 많은 사회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국가 공동체가 자신들의 기억을 망각한 데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흑인 차별의 역사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옅어진 미국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식민지배 시기의 역사를 망각한 일본이 주변국들과 겪는 갈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가 “과거의 역사가 묻혀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단언하는 이유다.
2015년 출간한 소설 《피묻힌 거인》을 통해 민족과 국가 같은 공동체가 자신들의 집단적인 기억을 직시하거나 망각하는 과정에 대해 다룬 그는 앞으로도 작품에서 이 주제를 다뤄 나가겠다고 밝혔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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