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 대통령이 실망만 안겨"…더블 스코어로 野에 '몰표'

입력 2021-04-08 05:00  


이변은 없었다.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가 63.02%(8일 0시10분 기준)를 득표해 당선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후보 득표율은 34.14%였다. 현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과 일자리난,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여권 인사들의 잇단 부정부패·성 추문에 대한 불만이 그대로 표로 드러났다는 평가다. 박형준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김 후보를 두 자릿수 지지율 차이로 따돌리며 여유있게 선두를 지켰다.

국민의힘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민주당에 빼앗긴 부산시장 자리를 3년 만에 탈환하게 됐다. 여권 관계자는 “오 전 시장 성추행 사건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등 악재가 연달아 터진 탓에 작년 4·15 총선 때부터 돌아선 부산 민심을 되돌리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與 네거티브 공세 잠재운 ‘정권 심판론’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박 당선인에 대한 여당의 네거티브 공세와 야권이 내세운 정권 심판론이 맞붙은 선거였다. 민주당은 후보 선출 전부터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 당선인의 국가정보원 불법 사찰 관여 의혹을 제기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양당 대진표가 확정된 뒤엔 박 당선인의 부산 해운대 엘시티 특혜 분양 의혹,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을 연일 파고들었다. 선거전 막판에는 박 당선인의 재혼 사실을 언급하며 “조강지처를 버렸다”고 비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당의 네거티브전은 별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박 당선인과 김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선거가 종반전으로 접어들수록 더 벌어졌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직전인 3월 30~31일 국제신문·리서치뷰가 시행한 지지율 조사에서 박 당선인은 김 후보를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차이(57.6% 대 32.4%)로 압도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인성교양학부 교수는 “2017년 대선에서 부산이 부산을 연고지로 둔 문재인 대통령을 뽑고 그 이듬해엔 오 전 시장에게 ‘지역 정권 교체’를 할 수 있게 해줬는데도 부산 경제는 좋아진 게 없다는 게 대체적인 민심”이라며 “이런 문제에 대한 변화를 박 당선인에게 기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BBK 주가 조작 사건 등 각종 의혹에도 ‘경제 살리기’ 프레임을 내건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던 2007년 대선 양상과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비슷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LH 사태’가 승부 쐐기 박아
인구 유출이 가속화하는 데다 수도권보다 개발이 더뎌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온 부산 시민들 사이에선 정부·여당이 추진해온 가덕도 신공항이 지역 경제를 살릴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을 묻는 국제신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1.4%가 ‘지역 경제 활성화 가능성’을 꼽았다. 지난 2월 말 민주당 주도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여권 일각에선 “부산시장 보궐선거도 해볼 만하다”는 희망 섞인 얘기가 흘러나왔다.

실제 정당 지지도가 국민의힘에 두 자릿수대 격차로 뒤지던 민주당은 특별법 통과 직후 지지율 역전에 성공하기도 했다. 다만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김 후보뿐 아니라 박 당선인의 공약이기도 해 ‘가덕도 효과’가 반감됐다는 분석이 있다.

지난달 터진 LH 직원 땅 투기 사건은 여권의 ‘극적 역전’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렸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 정부 인사는 서민과는 동떨어진 사람들’이란 생각을 확신으로 바꾼 사건”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한 부산 시민들이 느낀 배신감은 그 누구보다 컸을 것”이라고 했다.
‘엘시티 의혹’이 연임 발목 잡을 수도
박 당선인은 2004년 17대 총선 당시 부산 수영에서 당선돼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국회의원이 됐다. 이명박 정부에선 청와대 홍보기획관과 정무수석을 지냈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보수 혁신’을 외쳤던 인사 중 한 명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녹색 성장’ ‘중도 실용’ 등 국정 철학을 이론화하고 연설문으로 쓰는 작업을 했다.

박 당선인은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연임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엘시티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 재선은커녕 1년여 시정의 동력도 잃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친이(친이명박)계 출신인 박 당선인이 야권의 차기 대권 레이스에 일정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는 “박 당선인은 당분간 중앙정치와 거리를 두고 연임 도전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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