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복병' 된 교육환경평가…사업지연 속출

입력 2021-04-08 17:49   수정 2021-04-09 02:54


2017년 도입된 교육환경영향평가가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지연시키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심의 지연으로 4년가량 사업이 멈춰 서는가 하면 학교의 무리한 요구로 수백억원의 손해를 감수하는 사업장도 나오고 있다. 관할 교육청 심의는 정비사업 주체와 학교 간 협의를 보지만,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민간 정비사업의 규제가 풀려도 계속 공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잠실5단지 4년째 ‘제자리’
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 조합은 이달 교육청에 교육환경영향평가 보완조치계획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앞서 낸 보완계획서에 대해 교육청 교육환경보호위원회가 재보완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단지는 2017년 9월 결정된 정비계획 가이드라인에 따라 2018년부터 교육환경영향평가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4년째 보완 요구와 재접수를 반복하며 제자리걸음 중이다.

교육청이 심의를 지연시키는 것은 단지 내 신천초 부지(1만4414.1㎡)와 관련해 서울시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해당 초등학교 대지는 교육부 소유, 건물은 교육청 소유다. 서울시 가이드라인에는 현재 신천초 위치를 단지 서측으로 이전 배치하도록 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교육청은 학교를 두 개로 늘리면서 사용 부지도 1600㎡가량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서울시는 임대주택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조합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초구 신동아아파트도 2019년 초 신청한 건축심의가 주변 학교와의 일조권 문제 때문에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학교 요구를 수용하면 전체 가구 수의 25.6%에 해당하는 336가구가 줄어든다”며 “조합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교육환경영향평가는 정비사업으로 인한 학생 수 변화, 학교환경, 안전 등 교육환경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심의로 2017년 법제화됐다. 사업지로부터 반경 200m 이내(신설 예정 포함)에 학교가 있는 정비사업지는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사실상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인근에 학교가 있는 거의 모든 사업장은 크고 작은 문제를 겪고 있다고 정비업계는 주장한다. 경기 광명 11구역은 학생 수 증가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학교 요구에 따라 300억원을 들여 학교를 증설해 주기로 했다. 사업 기간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전향적인 합의였지만 결과적으로 사업은 1년 넘게 지연됐다. 합의 막바지에 학교장이 바뀌면서 합의를 번복해서다.

경기 안양 비산동 재개발사업도 학교 일조권 확보를 위해 2개 동 층수를 낮췄음에도 사업 기간이 3년이나 지연됐다. 서울에서도 송파구 진주아파트가 일조권 문제로 288가구를 줄였고, 노량진 6·7·8 재개발사업조합은 학교 진입로 확장을 위해 35억원을 들여 건물을 매입했다.
“무리한 요구도 거부 못해”
전문가들은 교육환경영향평가가 정비사업 진행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교육환경영향평가 심의를 할 때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학교장과의 협약서가 대표적이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산업본부 부장은 “협약서를 받아가지 못하면 심의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사업시행자로서는 수백억원의 비용을 투입하더라도 학교장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중재할 대안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교육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되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 법적으로 심의 신청 후 처리 기간은 45일 이내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심의가 비정기적으로 열리거나 아예 안건을 상정하지 않는 등 유명무실하게 운영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학교와 원활하게 합의된다고 해도 설계변경으로 건축심의를 다시 받으면서 사업 기간이 지연된다”며 “각종 영향평가를 건축위원회 심의와 통합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통해 공급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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