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드는 거대한 변화들은 예기치 못한 순간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2017년부터 수년간 세계에 파문을 일으켰던 ‘미투(Me too) 운동’은 여배우 한 명의 폭로로 불이 붙었다. 2010년 튀니지의 재스민혁명, 영국의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역시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이다. 이 같은 급격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뭘까.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는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넛지》의 공저자로 유명한 캐스 R 선스타인은 행동과학에 능통한 정책 전문가다. 2009~2012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규제정보국 국장으로 일하며 정책설계 과정에 자신의 전문지식을 활용했고, 각국 정부와 협력해 넛지 이론을 적용한 정책을 개발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주요 사례는 변화의 흐름이 분출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사회 주류 규범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졌던 가치관이 일단 변화가 시작되면 기존 질서를 그 무엇보다 빠르게 허물어뜨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의 초반부는 이런 변화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규범 선도자가 등장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변화에 대한 임계점이 낮은 사람부터 차츰 대열에 합류해나가며, 주류로 여겨졌던 규범을 허물어뜨리는 과정과 도전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소들에 대해 다룬다.
선스타인은 대중의 지지를 얻어 사회를 바꾸는 데 성공한 도전들은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라는, 운동의 목적을 상징하는 뚜렷한 사례들을 갖고 있다고 표현한다. 미투 운동이 그토록 빠르게 퍼져나갔던 것은 우마 서먼, 애슐리 쥬드와 같은 유명 여배우들이 피해 사례를 직접 폭로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성추행과 성폭행이 만연한 사실을 대중에게 널리 인식시켰기 때문이다. 재스민혁명 또한 20대 노점상 청년의 분신자살이라는 강렬한 이미지가 대중을 움직였다.
선스타인은 “심각한 차별에 관한 특정 사례가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을 때 사람들은 그런 차별이 만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이런 사건에 대한 관심은 도덕성과 규범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상호 교류를 통해 기존 규범이 이미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공유하기 시작하면 기존 체제의 균열이 시작된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남아 있는 ‘보호자 관습’에 대한 젊은 사우디 남편 집단의 인식 변화를 보자. 실험에 참여한 젊은 남편들에게 다른 남성도 아내가 밖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제공하자 이들도 진짜 속마음을 드러냈다. 자신들도 아내가 바깥일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며 아내의 사회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저자들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며 동료 시민이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는 것이야말로 사회 변화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하는 행동과학 개념인 넛지를 사회변화를 위한 정책설계 과정에 접목하는 방안과 이 과정에서 꼭 지켜야 하는 윤리적 규범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디폴트 룰 △용이성과 편의성 강조 △이미지 등을 활용한 경고 △실행 의지 자극하기 △사전 약속 전략 등 넛지 개념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열 가지 방안 등에 대해 다룬다.
실제로 여러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특정 방향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넛지 정책에는 그만큼 엄격한 투명성과 공정성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감정적인 반응과 당파주의에 근거한 비합리적인 정책 결정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저자들은 특히 당파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라는 개념을 깊이있게 설명하며 처음부터 비슷한 정치 성향을 갖춘 사람들끼리 모인 집단이 논의를 거듭할수록 구성원의 평균적인 성향보다 더 극단적인 성향을 띠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들은 “사전 조치 전략과 기술 관료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야말로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 있는 접근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전문적 영역에 대한 판단의 일정 부분은 전문가와 기술관료 집단에 결정권을 위임하는 것이 당파주의의 해악을 완화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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