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좀 남는 거 있어? 집에 쌀이 떨어져서.”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이솜 분)는 젊은 가사도우미다. 몇 푼 안 되는 일당으로 단칸방 월세를 감당하느라 쌀을 사는 것도 빠듯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는 게 있다. 담배 한 갑과 몰트바에서의 위스키 한 잔이다. 멋 없는 새치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 따로 약도 지어 먹는다. 거기에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만 있으면 세상은 살 만하다. 그러나 갑작스레 월세와 담뱃값이 오르면서 그동안의 삶이 틀어지고 만다.
미소는 왜 ‘유랑민’이 되기를 선택했을까. 갑작스레 물가가 올라서다. 집주인은 월세를 올렸다. 설상가상으로 2500원이던 담뱃값은 하루아침에 4500원이 됐다. 정부가 담배에 붙이는 세금을 높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왜 담배에 붙는 세금을 올렸을까.
대부분의 사회에서 흡연은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담배를 피울수록 흡연으로 인한 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간접 흡연으로 인한 피해도 많다. 흡연자가 늘어날수록 정부의 건강보험료 등 사회적 지출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특정 경제 주체의 행동이 다른 주체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을 ‘외부 불경제’라고 한다. 술, 담배, 패스트푸드 생산 기업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이런 경우 정부는 외부 불경제 효과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높이기도 한다. 일종의 죄악세(sin tax)다.
<그림>에서 정부가 기대한 것은 세금을 높여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담뱃값을 높이면 그만큼 담배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영화 속 미소 역시 집을 떠나면서도 담배는 놓지 못한다. ‘에쎄’를 500원 더 싼 ‘디스’로 바꿀지언정 말이다. 정부의 계산과 달리 담배의 수요 탄력성이 낮았던 셈이다. 수요 탄력성이란 가격에 따라 수요가 변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미소에게 담배와 위스키는 수요 탄력성이 없는, 즉 가격이 올라도 포기할 수 없는 재화였다.
그러나 곧 친구들의 속살이 하나둘 드러난다. 겉은 번지르르했던 친구들의 한구석은 모두 곪아 있었다. 번듯한 집에 시집간 것 같았던 현정과 정미는 남편과 시부모의 등쌀을 하루하루 견디며 살고 있었다. 대용은 결혼을 위해 집을 마련했지만 결혼하자마자 이혼한 상태였다. 남은 것은 월급에 버금가는 주택담보 대출 빚이었다. 문영은 회사 쉬는 시간마다 링거를 맞으며 버텼고, 록이는 부모님의 간섭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미소의 친구들은 왜 그렇게 힘든 현실을 버텼을까. 경제학적으로는 기회비용이 적은 쪽을 선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집이나 회사가 주는 안정감이 더 컸기 때문에 자유라는 기회비용을 감내한 셈이다.
정미와 미소의 삶은 왜 이렇게 다를까. 경제학자 케인스는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소비를 비교하면서 ‘한계소비성향’이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한계소비성향은 추가로 발생한 소득 중 소비되는 금액의 비중을 뜻한다. 저소득자일수록 한계소비성향이 크다고 케인스는 정의한다. 예를 들어 보자. 월 수입이 100만원인 사람은 소득이 10% 늘어나면 10만원을 다 소비할 확률이 높다. 생필품이나 식음료를 사는 데 곧장 지출하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입이 1000만원인 사람은 소득이 10% 늘어나면 100만원을 다 쓰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대신 이 금액을 저축하거나 투자하게 된다. 이런 한계소비 성향 때문에 소득이 많은 사람은 자산이 더 빨리 늘어난다.
정소람 한국경제신문 기자 ram@hankyung.com
② 주거안정과 기호품 소비 가운데 기회비용까지 고려했을 때 나에게 더 많은 만족감을 주는 쪽은 어디일까.
③ 남에게 피해를 주는 ‘외부 불경제’의 경우 수요 탄력성이 낮더라도 세금정책 등으로 제품값을 계속 올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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