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연결·긴장…'일과 일상 사이' 행복을 묻다

입력 2021-04-11 16:48   수정 2021-04-12 00:48


탁 트인 전시장 안에 프레임만으로 구분된 공간. 유리벽이 없어 누구나 걸어서 넘나들 수 있는 곳에 디지털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천장에서 스노머신이 검은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눈을 뿌리는 가운데 건반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음악을 연주한다. 설치작품 ‘눈 속의 공장(우편배달부의 시간)’을 완성시키는 것은 그 음악의 정체다. ‘그란돌라 빌라 모레나(Grndola, Vila Morena)’. 1974년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의 시작을 알렸던 노래다.

공간 너머로 파란색 네온으로 만든 복잡한 수식(數式)이 보인다. 2014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UCL) 논문에 실린 ‘행복을 계산하는 공식’이다. 거리의 불빛처럼 공간 안을 비추는 행복 공식, 자유를 추구하는 민요를 연주하는 피아노가 빚어내는 앙상블은 강한 울림을 준다.

광주 운암동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리암 길릭(57·사진)의 개인전 ‘워크 라이프 이펙트’에서 각각의 작품은 서로 긴장감과 조화를 빚어내며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길릭은 영국 현대미술 부흥기를 주도한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대표 작가 중 하나다. 2002년 영국 터너상 최종 후보에 올라 세계 미술계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이후 영국 테이트모던,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개념인 ‘관계 미학’ 이론 정립에도 크게 공헌했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권 미술관에서 여는 개인전으로, 지난 30년간의 주요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위해 코로나19를 뚫고 한국에 온 그는 “일과 일상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대 도시생활에서의 공간을 표현했다”며 “코로나19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가속화한 것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고 했다. 작품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전시장 벽에 행복의 공식을 써놨지만 그것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며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른 방향의 새로운 시각을 갖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길릭은 이번 전시를 위해 2019년에도 광주를 찾아 광주의 역사를 배우고 현장을 방문했다. 아일랜드 혈통인 그는 “아일랜드의 역사 속 슬픔을 보고 듣고 자라서 내 작품에는 그 기억이 녹아 있다”며 광주의 역사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그는 “이번 전시는 광주와 직접 연관성은 없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는 오는 6월 27일까지.

광주=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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