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국가교육과정에서 기르고자 목표하는 역량과 미래형 수능에서 평가하는 역량이 일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국가교육과정을 자주 개정해왔지만, 사실상 학생 스스로 생각을 꺼내는 역량보다 교과서 지식을 얼마나 잘 집어넣었는지를 평가하는 패러다임은 수십 년간 동일했다. 국가교육과정의 목표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다. 현재의 2015 교육과정도 문서로 보면 4차 산업혁명 대비를 다 하고도 남을 만큼 목표는 훌륭하다. 그런데 국가교육과정에서 기르고자 하는 이 역량들이 대입 시험인 수능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다. 미래형 수능에서는 국가교육과정이 목표로 하는 역량과는 다른 능력을 측정하는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둘째, 학교 교육과 대입 시험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아무리 책 읽고 토론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생각을 꺼내는 수업’을 하려고 해도, 입시에서 문제풀이 반복이 필요하면 학생들은 문제풀이에 ‘올인’하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서 ‘입시 교육’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은 입시에서 측정하는 능력이 교육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 유럽은 책 읽고 토론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수업 자체가 입시 교육이다. 그런 방식으로 수업해야만 입시에서 고득점을 얻을 수 있는 평가구조이기 때문이다.
셋째, 교육생태계를 혁신하려면 학생, 학교, 대학, 사회(산업·고용) 요소를 시대적 요구의 맥락에서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학생에게 어떤 역량을 길러줄 것인지, 그 역량을 기르기 위해 학교는 어떤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지, 대학은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이며, 산업체 고용 시장에서는 어떤 인재가 필요할 것인지, 가늠해야 한다. 미래형 수능에서 결국 어떤 역량을 측정하는지에 따라 이 요소들의 성패가 좌우된다.
미래형 수능에서는 국가가 정해놓은 정답 찾기보다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 비판적 창의적으로 사고해내는 역량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변별용 킬러 문항(AI는 쉽게 풀 수 있는)으로 최상위권조차 소모되는 국가적 에너지 낭비가 없어져야 한다. 양극화를 줄인다고 국가가 나서서 객관식 문제집 사업을 하면서 그 EBS 문제집에서 수능 문제를 내겠다는 희한한 행태도 사라져야 한다. 양극화는 시대적 요구와 동떨어진 능력을 훈련시키는 문제집 사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대적 역량을 기를 기회가 상·하위권 모두에 제대로 주어질 때 감소한다.
현재 공교육은 2025년부터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가 현안들을 흡수하고 있는 블랙홀이라고 하지만, 고교학점제 자체가 AI 시대를 대비할 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대학처럼 개인이 수강 신청하는 형태가 된다고 해서, 꺼내는 교육이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 이미 대학 교육에서 오랫동안 확인돼왔다.
또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가 된다고 해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역량이 길러지는 것도 아니다. 이미 수능에서 영어와 국사를 절대평가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이 푸는 문제집의 종류는 똑같고, 그래서 길러지는 능력도 똑같다. 그럼 교육이 뭐가 바뀐 것인가?
경쟁이 완화된다고 해서 시대적 역량이 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시대적 역량을 기르려면 결국 평가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형 수능에서 어떤 능력을 측정하도록 할 것인지에 따라 세계적 흐름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우리가 선점할 수 있을지, 구한말처럼 또다시 한발 늦어서 허덕이며 뒤따라가야 하는지, 결정짓게 된다. 기존의 수능 개편처럼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 둔 채 껍데기만 바꾸는 시늉으로는 시대적 전환을 놓치는 역사적 실기(失期)만 기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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