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차가운 전쟁’이지, 실제로는 크고 작은 전쟁이 잇달았다. 스무 개에 가까운 나라들이 참가해서 세 해 넘게 싸운 한국전쟁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와 미국이 직접 싸우지 않았을 따름이다. 드러내놓고 적대적인 두 강대국이 ‘뜨거운 전쟁’으로 치닫지 않도록 한 요인은 파멸적 위력을 지닌 핵무기였다.
핵무기의 출현은 강대국들에 새로운 전략을 강요했다. 그런 전략의 바탕을 마련한 사람은 미국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이었다. 1960년 출간된 저서에서 그는 국제적 상황을 경기이론(Game Theory)으로 분석하면서, ‘전략적 위협’을 정책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후적 보복(revenge ex post)’ 대신 ‘사전적 억지(deterrence ex ante)’를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셸링의 이론에 따라, 상호확증파괴(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정책이 공식적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MAD는 분명히 기여했다. 그러나 억지력을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으므로, 그것은 군비 경쟁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제 핵전쟁이 일어나면 인류만이 아니라 현생 종들의 태반이 사라질 위험이 크다.
군비 경쟁이 진행되고 핵무기가 발전하면서, MAD도 진화했다. 마침내 1980년 지미 카터 정권은 ‘대항적 전략(Countervailing Strategy)’을 채택했다. 전체주의 지도자들이 국민의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점을 고려해서, 보복 공격의 우선순위를 조정한 것이었다. 종래 전략은 주요 도시들을 주요 표적으로 삼았는데, 새 전략은 러시아 지도부를 먼저 공격하고 그다음 러시아 군대를 공격하기로 했다. 전체주의의 생리를 고려한 현실적 정책이었다.
1990년대에 냉전이 자유 진영의 승리로 끝나자, 빠르게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미국 사이에 새로운 냉전이 시작됐다. 자연히 MAD도 부활했다. 우리의 대(對)북한 전략에선 늘 MAD가 기본이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한·미 동맹을 통한 미국의 핵우산이 더욱 절실해졌다.
문제는 미국이 개입하기를 꺼릴 만한 국지적 침공을 북한이 해올 경우다. 예컨대 생물학 무기를 사용하면서 한강 이북 일부 지역을 점령하면, 미국은 핵무기 사용을 주저할 가능성이 있다. 한·미 군사훈련은 늘 북한군의 전면적 침입을 가정하고서 진행돼 왔다고 알려졌다. 북한이 핵무기를 쓰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국군이 과연 반공해 북한군을 내몰 수 있을까?
이런 전략적 틈새를 메워주는 것이 ‘참수부대’라 불리는 13특수임무여단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므로, 북한 수뇌부를 목표로 삼는 참수부대의 존재는 북한군의 국지적 침공을 억지해왔다.
이번에 참수부대의 실태가 드러나면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 부대가 실질적으로 와해된 것 아니냐는 걱정이 일었다. 작년에 훈련하다가 총기를 분실했고 올해엔 작전용 무인기를 분실했다는 보도가 나오더니, 참수부대의 전투 장비들이 남수단에 파견될 부대에 대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참수부대는 늘 출동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부대들에 앞서서 지원을 받아야 한다. 북한으로, 그것도 평양으로, 침투한다는 임무가 얼마나 어렵고 위험하겠는가. 그런 부대에서 전투 장비를 빼내서 해외 파견 부대에 줬다니, 무슨 얘기를 더 하겠는가.
현 정권의 국방 정책엔 이해할 수 없는 조치가 많았다. 너무 많았다. 그래도 북한군의 침공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높였다는 점에서 참수부대를 와해시키려는 시도는 특히 문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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