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도체 드라이브’를 관통하는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다. 미국은 반도체 기술 강국이지만 생산은 주로 외부에 의존했다. 미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제조 분야의 미국 점유율은 1990년 37%에서 현재 12%로 떨어졌다. 시스템 반도체는 대만이,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 이 같은 분업체계를 자국 내 생산을 늘리는 쪽으로 바꾸겠다는 게 미국의 구상이다. 반도체가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부각된 데다 최근 반도체 부족으로 미국 자동차 공장들이 생산 차질을 빚으면서 이런 분위기가 더욱 굳어졌다.
인텔은 20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은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 역시 미국 내 공장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더 이상 팔짱만 끼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반도체산업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둘째, 중국 견제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와 함께 중국의 반도체 패권 도전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SMIC와 하이실리콘을 수출 통제 대상(블랙리스트)에 올렸고 바이든 행정부는 슈퍼컴퓨팅 기업·연구소 일곱 곳을 이 목록에 포함시켰다. 이 중 3개사는 슈퍼컴퓨터용 반도체 칩을 개발하는 곳이다. 수출 통제 대상이 되면 미국 정부의 사전허가 없이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다. 미국 기술이 들어간 장비 수입도 제한된다. 반도체 개발과 생산을 위해 필요한 기술 도입과 장비 수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셋째, 안보와 경제의 융합이다. 백악관은 이달 초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서 반도체 문제를 핵심 이슈로 꺼냈다. 당시 미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반도체 제조기술과 공급망, 반도체 기술 표준에서 한·미·일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인공지능(AI), 차세대 네트워크를 아시아 전략의 핵심에 두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기술 권위주의’에 맞서 ‘기술 민주주의’를 결집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안보와 기술이 맞물리면서 한국이 반도체산업에서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모호한 태도를 보이기가 더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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