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 소득 파악이 어렵다고?…골프 쳐본 사람들은 안다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1-04-13 09:31   수정 2021-04-13 11:24


고용보험 대상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정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고용보험 세부적용 방안을 지난 2월 내놨다. 보험설계사, 카드모집인, 학습지 방문 교사, 방문 판매원등 12개 직종은 오는 7월부터, 그리고 대리운전기사와 퀵서비스기사는 내년 1월부터 고용보험 대상에 편입시키기로 했다.

재밌는 것은 골프장 캐디에 대해서는 유독 적용시기를 추후에 검토하겠다고 한 점이다. 그 시기는 '2022년 이후'로 했지만 사실상 무기 연기에 가깝다. 더욱 흥미로운 건 특고중 유독 캐디만 고용보험 적용을 연기한 이유다. 고용노동부는 "캐디의 소득파악 체계 구축 상황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고용보험에 가입하려면 고용 보험료를 내야 하고 보험료는 소득을 토대로 정해진다. 따라서 소득파악이 잘 안되면 고용보험료 산출이 어렵고 고용보험 가입이 어려워진다. 고용노동부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캐디의 소득파악이 힘들어 고용보험 적용을 연기한 것이다. 정말 그럴까.

골프를 쳐 본 사람들은 "캐디 수입 파악이 왜 어렵지?" 라는 의문부터 들 것이다. 골프장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캐디피는 정해져 있고 골프장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다. 모든 골프장에는 어느 캐디가 몇일 몇시에 어느 코스에서 일했는지, 한달에 몇번 일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세세히 다 있다. 월 근무 횟수에 캐디피를 곱하면 월소득은 간단한 계산으로 다 나온다. 여기에는 손님이 주는 팁이 빠져 있지만 게임당 몇만원 정도이고 못받는 경우도 있어 이는 무시한다고 쳐도 말이다. 골프장 근무기록표만 열면 단순한 산수로 다 나오는 캐디의 소득파악이 어렵다는 게 고용부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보험설계사나 기타 특고들은 보험회사나 플랫폼 사업자등이 사업소득에 대해 원천징수를 하기 때문에 소득파악이 가능하지만 캐디의 소득은 손님이 직접 캐디에게 지급하는 만큼 알 방법이 없다"고 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사실 특고직 중에서 캐디만큼 소득이 드러나는 직종도 드물다. 국세청이 오래 전부터 캐디들에게 소득세를 과세하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말에 충실했다면 사실 국세청은 진작 캐디들에게 세금을 부과했어야 한다. 골프장 근무기록표만 보면 과표가 다 나오니 말이다.

그렇지만 국세청은 지금까지도 캐디에게는 세금을 물리지 않고 있다. 웃긴 건 캐디에 과세하지 않는 이유를 국세청에 문의해도 공식적인 답변은 고용부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골프장들이 소득 자료를 주지 않으니 캐디의 소득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골프장들이야 국세청이 소득 자료를 요구하지 않으니 가만히 있을 뿐, 정말로 요구한다면 감히 국세청의 요구를 거부할 골프장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나.

세금은 그 자체가 정치이고 표(票)다. 잘 못 건드렸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종부세 등 부동산 세금 급증이 결정타였다는 분석이 많다. 역대 정권이 캐디에게 세금을 물리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캐디는 직업 특성상 불특정 다수 손님을 매일 만난다. 이들이 정권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택시기사 못지 않게 여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니 캐디들의 소득이 빤히 보여도 역대 모든 정권이 세금을 걷지 않은 것이다.

소득세를 물리지 않았던 캐디를 고용보험 대상으로 편입시키면 소득이 드러날테고 더 이상 과세를 미룰 수 없다. 캐디들에게 세금을 물릴 경우 표(票) 떨어지는 소리를 예감한 정부가 특고 중에서 유독 캐디만 고용보험 대상에서 빼버린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에게는 "소득 파악이 어렵다"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댔다. 국민을 우습게 본 것이다.

특고 중에는 보험설계사처럼 구조상 소득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직종이 있다. 이런 직종 종사자들은 오래전부터 소득세를 내왔다. 이들은 고용보험에 편입되는 것에 상대적으로 저항이 크지 않다. 물론 사업자 측의 고용보험료 부담 증가로 특고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자신들 역시 고용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며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소득세야 원래부터 냈던 것이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혜택도 있다.

반면 캐디처럼 특고임에도 소득세를 내지 않았던 직종은 고용보험 가입에 훨씬 더 반대할 수밖에 없다. 한 조사에 따르면 캐디들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경우 소득세와 보험료 등 부담으로 연간 실질소득이 20% 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요즘에는 골프장마다 캐디 구인난을 겪고 있어 굳이 고용보험이 커버해주는 실업급여가 필요하지 않다는 캐디들도 적지 않다.

결국 정부가 특고의 고용보험 편입 대상에서 캐디를 사실상 뺀 것은 이같은 캐디들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반면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된 특고들은 과거부터 소득세를 냈던 직종이거나 새로 세금을 내더라도 큰 반발이 우려되지 않는 직종들이라고 보면 된다.

정부가 이런 꼼수를 쓰게 된 것은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무리한 목표를 성급하게 추진하려고 의욕만 넘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보험은 원래 봉급생활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특고에 이렇게 확대하는 것이 옳은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그랬듯이, 형편이 어려운 특고를 돕겠다는 고용보험 확대가 결과적으로 이들의 일자리를 줄이고 소득도 줄이는 상황도 곳곳에서 예상된다. 현 정부들어 너무도 빈번하게 나타나는, 약자(弱者)를 위한다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약자를 더욱 어렵게 하는 사태가 성급한 고용보험 확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특고에 대한 무리한 고용보험 적용에 대해서는 형평성, 도덕적 해이, 재원 등에 대한 우려 역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글은 캐디에게 세금을 물리자는 주장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며 정부의 '꼼수 행정'을 비판하기 위한 것임을 밝혀둔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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