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바이든이 “중국은 기다리지 않는다”며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 의지를 강조한 점은 비상하게 볼 대목이다. 반도체가 단순히 경제·산업의 이슈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핵심 과제라는 인식을 담고 있어서다. 반도체처럼 미국서 개발된 과학·산업기술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중국 군사력 첨단화와 경제성장의 디딤돌이 되는 것을 막지 않고는 미국의 안보와 글로벌 경제주도권을 모두 잃을 것이란 위기감이 읽힌다. 미국 안보를 총괄하는 국가안보보좌관이 회의를 주도한 것도 그런 심증을 굳게 한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 따로, 외교·안보 따로’식 대외전략을 폈던 것과 비교하면 180도 달라진 태도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는 그것대로 담판지으면서도 동맹국 방위비 인상에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반면 바이든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앞서가려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전략산업과 안보정책, 경제정책을 한데 묶어 대응해야 한다는 ‘빅 픽처’를 그리고 있다. 그것이 반도체 분야에서 먼저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이번 회의는 첨단·미래산업 분야의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 이제는 미·중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지 말고 한쪽을 분명히 선택하라는 통첩이기도 하다. 미국 텍사스에 파운드리 공장을 가동하면서 대(對)중국 반도체 매출이 전체 반도체 매출의 30%를 점하는 삼성전자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20조원 규모의 미국 내 반도체공장 신규 건설로 양해될 일인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슈퍼 파워’ 미국의 대외전략 변화로 한국 반도체산업의 ‘자기 결정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 :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고집하는 한국의 외교·안보전략도 심각하게 재검토돼야 할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 균형자·줄타기 외교의 유효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국제정세의 중대 전환기에 자칫 전략적 오판으로 씻을 수 없는 국익 손실을 초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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