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시설인 연구용 원자로와 가속기는 다양한 용도를 가지고 있다. 연구용 원자로라고 하면 미국 과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건설한 최초의 원자로와 같이 시험용으로 만든 원자로를 연상하기 쉽다. 그리고 가속기라고 하면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강입자가속기와 같이 원자보다 작은 아원자입자를 연구하는 시설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연구용 원자로와 가속기는 의외로 원자나 분자가 이루는 나노미터() 크기의 세계, 즉 나노 세계를 관찰하는 데에도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되며, 현대 문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레벤후크가 만든 현미경은 구형의 렌즈가 하나만 달린 단안경에 불과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세계를 관찰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광학현미경은 발전을 거듭했으며, 현대에는 수십만 배의 배율을 가진 전자현미경에서 원자 하나하나를 구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주사터널링현미경(STM)까지 다양한 장비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연구용 원자로와 가속기에서 만들어지는 입자를 광학현미경의 빛 대신 사용하면 현미경처럼 미세한 세계를 관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다양한 입자를 이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방사광과 중성자이다. 방사광은 엑스선이나 자외선 정도의 파장을 가진 강력한 빛이다. 방사광가속기에서는 전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한 뒤, 전자가 날아가는 궤도가 휘면서 발생하는 방사광을 실험 장치로 보낸다. 중성자는 양성자와 함께 원자핵을 구성하는 핵자인데, 양성자가속기에서 양성자를 가속시켜 무거운 원자핵을 때려서 깨뜨리면 발생한다. 연구용 원자로에서는 연쇄 핵분열 반응 과정에 다량으로 생기는 중성자를 실험 장치로 보내 이용할 수 있다.
방사광과 중성자의 파장은 나노미터 전후이기 때문에 수백나노미터의 파장을 가진 가시광선보다 훨씬 작은 원자와 분자의 세계를 관찰할 수 있다. 또한 광학현미경은 대상의 표면만 관찰할 수 있는 데 비해 방사광과 중성자는 물질을 잘 투과하므로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사용해 우리 몸 안을 촬영하듯이 내부 구조를 측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방사광과 중성자가 가진 서로 다른 특성 덕분에 가시광선으로 보지 못하는 자기적 성질과 같은 특징도 여러 측면에서 관찰이 가능하다.
레벤후크의 현미경이 마이크로의 세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방사광과 중성자는 나노 세계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고 제품의 품질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이루는 단백질 구조를 측정하고 이 바이러스가 치료제와는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밝히는 데 사용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배를 건조하는 데 사용하는 두꺼운 강철판에 용접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본격적인 과학 도구로 사용할 만큼 규모가 큰 연구용 원자로와 가속기는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므로 나라마다 하나 갖추기도 쉽지 않은 도구이다. 우리나라가 과학 선진국 및 강대국들과 함께 두 가지를 모두 보유한 나라의 반열에 든 것은 1990년대에 동시에 건조된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와 포항 방사광가속기 덕분이다. 조만간 충북 오창에도 강력한 방사광가속기가 들어설 예정이다.
나노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연구용 원자로와 가속기는 현대의 최첨단 현미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과학강국으로 남기 위해서는 이들 시설을 잘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성능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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