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인이 명품에 아낌 없이 지갑을 연 결과, 국내 명품 시장 규모가 독일을 제치고 세계 7위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여행과 외출을 제대로 못하고 ‘집콕’에 지친 소비자들이 고가의 명품을 구입하며 보상감을 얻은 '보복 소비'가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를 중심으로 명품을 개성 표출 수단으로 여기는 '플렉스(flex)' 문화 확산도 이에 일조했다.
같은 기간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명품 매출이 19% 급감한 2869억달러에 그친 데 비해 타격이 거의 없었다.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을 제외한 주요국 명품 매출은 크게 감소했다. 세계 1위인 미국의 경우 652억3400만달러로 22.3% 급감했다.
이에 한국의 글로벌 명품 시장 매출 비중은 2019년 8위에서 지난해 독일(104억8700만달러)을 제치고 7위에 올랐다. 5위 영국(146억달러)과 6위 이탈리아(145억달러)와의 격차도 크게 좁혔다.
세계 최대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소속 브랜드 루이비통의 국내 법인 루이비통코리아 매출은 지난해 33.4% 뛰어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매출(1조468억원)은 종전 마지막으로 국내에 감사보고서를 공개한 2011년(4973억원) 이후 9년 만에 두 배 넘게 성장했다.
처음으로 실적을 공개한 에르메스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5.8% 증가한 4191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익과 순이익은 각각 15.9%, 15.8% 늘어난 1334억원, 986억원이었다.
마찬가지로 처음 실적을 공개한 샤넬은 면세점 업계 타격에도 불구하고 9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거뒀다. 통상 명품 브랜드들은 별도의 협력사를 통해 면세사업부를 운영, 실적이 별도로 집계되는 경향이 있지만 샤넬은 면세사업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3% 감소한 9296억원을 거뒀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34%, 32% 증가한 1491억원, 1069억원이었다.
그러나 이들 브랜드의 국내 기부는 막대한 매출에 비해 미미했다. 루이비통의 경우 작년 기부금은 0원이었다. 샤넬코리아와 에르메스코리아는 각각 6억원, 3억원에 그쳤다.
또한 명품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의 입맛에 맞추지 못한 일부 브랜드는 실적이 뒷걸음질쳤다.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 과정에서 화제가 된 페라가모가 대표적이다. 국내 법인인 페라가모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1056억원으로 29.7% 줄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반토막이 난 각각 45억원, 35억원에 그쳤다.
이같이 지난해 유통가에서 명품은 코로나19 '무풍지대'로 불리며 백화점 업계의 매출 방어를 도맡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주요 유통업체의 매출 동향을 분석한 결과, 백화점에서 명품을 비롯한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은 전년 대비 1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매출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전체의 30%까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23.3%)보다 6.7%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명품산업 호황은 위축됐던 소비심리가 폭발하면서 명품 구매로 이어진 '보복 소비'와 부의 과시를 위해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줄지 않는 '베블런 효과' 등이 요인으로 꼽힌다.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가 명품을 개성 표출 수단으로 여기는 '플렉스' 문화도 일조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보상심리가 강화된 상황에서 보다 개인의 가치관에 초점을 맞춘 고가 소비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교수)은 "코로나 장기화로 재택근무와 '집콕'이 확산하면서 본인에게 자기에 투자하는 '포미족' 소비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며 "만족을 주는 제품에는 아낌 없이 지갑을 여는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 소비가 중요해진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최재섭 남서울대 교수도 "소비자가 유지하던 일정한 소비 패턴이 코로나19로 인해 막히면서 고가 제품을 소비하려는 '보상소비' 흐름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며 "자산 가치 상승으로 인해 소득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연장된 소비양극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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