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탄생한 1801년은 베토벤에게 영광과 시련이 겹친 해였다. 그 시절 베토벤은 음악의 본고장 빈에서 촉망받는 작곡가로 막 부상 중이었다. 그러나 5년 전부터 그를 괴롭히던 청력 문제를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때 만난 게 17세의 귀족 소녀 줄리에타 귀차르디(1784~1856)다. 당시 베토벤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지난 2년간 내 삶은 얼마나 초라하고 슬펐는지 모르네. 그러나 이제 한 명의 귀엽고 매력적인 소녀에 의해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네”라고 썼다. 이듬해 월광 소나타를 헌정(獻呈)하며 그에게 청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차를 극복하지 못했고, 귀차르디는 다른 귀족과 결혼해 떠나 버렸다.
월광 소나타가 베토벤의 이런 실연(失戀)과 관련 있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반면 베토벤이 빈 교외의 한 귀족 저택에서 달빛에 감동해서 썼다는 설도 있고, 귀차르디가 아니라 다른 눈 먼 처녀를 위해 썼다는 주장도 있다.
작곡 배경이 어쨌든 월광 소나타가 세상에 나온 지 220년 지나 먼 한국에서 별로 유쾌하지 않은 논란거리가 됐다. 2019년 “월광 소나타가 문재인 대통령의 성정(性情)을 닮았다”며 연주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돼 새삼 소환된 것이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곧바로 청와대 교육비서관으로 옮겼고, 1년 만에 다시 ‘청와대의 입’으로 발탁됐다.
“명월(明月)이 천산만락(千山萬落)에 아니 비친 데가 없다”(친문단체의 광고 문구)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여당 서울시장 후보) 같은 ‘용비어천가’가 차고 넘치는 판에, 그 정도 아부성 발언으로 출세하는 걸 타박하는 게 야박해 보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역작이 후세에 이런 식으로 구설에 오른 것을 베토벤이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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