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경제계에 따르면 건설과 화학, 철강 업종의 주요 기업이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최고안전책임자(CSO) 등의 직책을 신설하거나 관련 조직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 법은 사업 현장에서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효성그룹은 이달 중순 지주사 ㈜효성과 효성중공업 효성티앤씨 등 주요 계열사에 ‘안전보건재해시스템 구축 태스크포스팀’을 세웠다. 이 팀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경영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경영활동을 하도록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다. 섬유, 화학, 건설 사업을 하는 효성은 사업장 대부분이 중장비 혹은 대규모 설비를 필요로 해 안전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CSO 등 안전관리 책임자를 신설하거나 직급을 높이는 기업도 많다. 포스코는 지난달 이사회에서 대표 직속으로 안전환경본부를 신설하고 본부장으로 이시우 부사장을 세웠다.
SK이노베이션은 유재영 SHE(안전·보건·환경)본부장을 올초 SK 울산콤플렉스(CLX) 공장장으로 선임하고 권한도 더 부여했다. LG디스플레이는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EO)라는 직책을 신설했다. 신상문 부사장을 CSEO로 선임하고, CEO에 준하는 막강한 권한을 줬다. 사업장에서 위험을 감지하면 작업을 중단하거나 아예 시설폐쇄 명령까지 내릴 수 있다.
업계에선 안전담당 최고 임원의 위상이 높아져 재해예방 활동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이 제대로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CEO와 안전 담당 임원을 정조준한 처벌 조항이 많고 수위도 상당해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표이사를 대신해 형사처벌을 받는 ‘총알받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관리 책임자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일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7월 이충호 전 한국산업안전공단 서울본부장을 전무급인 안전자문위원으로 선임했다. GS건설은 우무현 지속가능경영 부문 사장을 CSO로 최근 선임했다. 또한 대한산업안전협회, 대한산업보건협회 등 외부기관과 협약을 맺고 있다. 이를 두고 사고 발생 시 ‘방패막이’ 역할을 맡겼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안전사고 예방보다 처벌 강화에 초점을 둔 법안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는 CEO 또는 안전보건 책임자를 관리책임자로 보고 있다. 다만 법이 실제 시행되면 현장에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직 정확한 기준은 없는 상태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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