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유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는 생각이 강합니다. 유산은 쓰고 나면 사라집니다만 학문은 이어지죠. 제 80년 인생을 정리하다 보니 학문에 뜻을 갖게 해준 학교가 참 고마웠습니다.”
김 교수의 ‘거미사랑’은 대학 시절부터 시작됐다. 서울대 동물학과(현 생명과학부)에 입학한 그는 대학원에서 연구 주제로 지렁이를 택했다. 그러나 지렁이 채집을 위해 청계천에 갔다가 당시 오염이 심한 청계천을 보고는 마음을 돌려 거미 연구를 하기로 했다.
“청계천에서 지렁이를 채집하다 메탄가스 때문에 거의 질식 직전까지 갔죠. 이건 아니다 싶어서 아직 연구 미개척지였던 거미로 연구 주제를 바꿨죠. 당시만 해도 아시아 지역 거미들 학명은 모두 일본 학자들이 붙인 거나 다름없었어요. 한국인으로서 오기가 났죠.”
그는 1970~1980년대 서울 종로의 입시학원 스타 강사이기도 하다. 대학원생 시절 생계를 위해 시작한 강사 일이 점점 커지면서 당시 유명 학원이던 대영EMI를 인수했다. 경영자로 변신했지만 거미에 대한 연구 열정은 식지 않았다. 1981년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고 남양주 운길산에서 ‘한국땅거미’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그 자리에 한국거미연구소를 설립했다. 거미 연구에 전념하면서 새로 발견한 국내 토종 품종만 140여 종. 학원 경영에서 손을 뗀 뒤에는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딴 ‘주필거미박물관’을 설립했다.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거미를 가르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한국거미연구소는 최근까지도 중·고등학생을 위한 강연과 채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 교수는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자연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며 “코로나19 때문에 박물관 운영이 잠시 멈췄는데 하루빨리 해소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 교수의 바람은 한 가지 더 있다. 사재를 털어가며 조성한 거미박물관을 맡아줄 곳을 찾는 것이다. 2009년 동국대에 기증을 약속했지만 거미 연구의 가치를 보존하려면 국가기관이 맡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다. 김 교수는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박물관이 유지되길 간절히 바란다”며 “나중에 남길 것은 박물관에 붙인 이름 두 글자면 충분하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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