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손해배상을 할 책임이 있는지를 두고 3개월 만에 엇갈린 결론이 나왔다. 일본 정부를 피고석에 세우는 국내 소송이 가능한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이미 손해배상이 이뤄진 것은 아닌지를 두고 두 개의 재판부가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같은 취지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사법부 판단이 엇갈려 파장이 예상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5부는 일본 정부에 대한 국가면제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제관습법상 일본 정부를 국내 법정의 피고석에 세우는 소송은 불가능하며 대한민국 법원에는 해당 사건을 재판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피고(일본 정부)의 위안부 차출 행위는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이뤄진 인권 침해”라면서도 “영토 내 무력분쟁 과정에서 이뤄진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가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의 다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일본의 범죄 행위가 계획적·조직적으로 이뤄진 심각한 인권 침해 행위이므로 예외적으로 국가면제를 인정해선 안 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당시 판결에 대해 국가면제에 예외를 두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반박한 것이다.
재판부는 “국가면제 예외 범위를 확대할지, 만약 확대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할지는 국익에 잠재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법원이 추상적 기준을 제시하면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이어 “대법원 판례에 따르더라도 주권국가인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허용될 수 없다”며 “국제관습법은 국제 평화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고도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번 소송 재판부는 “한·일 합의로 어느 정도 권리구제가 이뤄졌으며 합의 과정에 대한민국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반영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2015년 한·일 합의는 외교적 요건을 구비하고 있고, 권리구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며 “100여 명의 피해자가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현금을 지원받은 점을 고려할 때 권리구제 수단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외국과 하는 외교적 협상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입장만 최종 합의안에 반영할 순 없다”며 “2015년 합의는 현재도 유효하게 존속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재판 말미에 “피해자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고 대한민국이 기울인 노력과 성과가 피해자들의 고통과 피해를 회복하는 데는 미흡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회복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노력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판결 직후 정의기억연대 측은 항소 여부에 대해 “할머니들과 논의해보겠다”며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연은 “일본은 1월 판결을 반드시 이행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남정민/오현아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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