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이 MZ세대의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가족 단위 관람객 또한 크게 늘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대구 문화예술계도 ‘인재 경영으로 성공한 조직’으로 인정한다. 알렉스 카츠, 팀 아이텔 등 선이 굵은 대가들의 전시와 대구 근대미술을 조명하고, 동시대 대구 예술인의 삶을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활발한 소통을 한 결과다.
30년 큐레이터 경력으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덕수궁미술관장, 경기도미술관장을 거친 최은주 관장이 2년 전 대구미술관장으로 오면서 생긴 변화다. 리처드 플로리다는 문화예술 기반이 강한 도시에 창조계급과 기업이 몰린다고 했다. 2021년 ‘인재도시 대구’를 선언한 대구시의 예술기관이 인재경영을 통해 혁신하고 시민의 사랑을 받는 인프라로 변신한 이야기를 최 관장을 만나 들어봤다.
▷취임 후 대구미술관의 전시기획 기능을 크게 강화했다고 들었습니다.
“전시 기획은 탄탄한 연구력을 바탕으로 한 주제 발굴, 주제를 전시 방식으로 풀어내는 창의적인 시도의 과정들이 합쳐져 하나의 전시로 보여져야 하거든요. 그런데 신생 미술관이던 대구미술관은 전시를 만들어낼 체계적인 구조가 학예실에 없어 관장의 지시를 실행하거나 외국에서 패키지 형태로 들여온 전시를 받아 풀어내는 코디네이터 역할에 머물렀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조직의 시스템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술관 시스템 구축을 위해 전시 아이디어를 내는 기획회의, 확정된 전시의 연구와 연구의 진전 단계를 보여주는 연구회의, 전시 종료 후 평가회의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큐레이터들이 좋은 의미에서 ‘건강한 경쟁심’을 갖고 서로 전시를 맡으려 하고 있습니다. 대구미술관은 이런 과정을 거쳐 2023년, 2024년 전시까지 기획을 마쳤습니다.”
▷대구시는 올해 ‘인재도시’를 선언했습니다. 대구가 창조도시로 가는 데 있어 미술 분야에서 인재의 중요성은 어떻게 봅니까.
“2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큐레이터를 ‘전시기획자’ 혹은 ‘소장품연구자’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요즘 세계 미술계 흐름을 주도하는 인물 중에 중요한 큐레이터가 등장합니다. 다양한 연구, 주제 발굴, 창의 시도 등을 통해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큐레이터들이 통찰력을 갖게 되면서 현대 사회의 새로운 문제점, 혹은 갈등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발현하게 되고, 미래 전망까지 하게 됩니다.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콰드레날레 등을 통해 뛰어난 기획자가 세계적 화두를 던지면 현대미술계는 그들의 전시, 발언, 저술을 참고해 움직이는 상황이 미술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문화 예술의 가치가 새롭게 평가되고 문화가 도시 발전의 핵심 역량이 되는 시대입니다. 대구는 지금도 왕성하게 현대 미술이 전개되고 있는 도시여서 대구 큐레이터들은 성장 가능성 높은 좋은 도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구미술관이 선도해 좋은 전시를 마련하면 대구 인재들이 문화적 창의성에 관심을 두게 되고, 이는 대구의 문화와 경제 활성화를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타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대구미술관은 기회로 작용했다고 하는데요.
“지난해 2월 코로나19로 대구미술관이 석 달간 휴관했습니다. 당시 미술관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한 이야기가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온라인 프로그램을 좀 더 적극적으로 기획했고 그런 시도들이 성공했습니다. 큐레이터 토크, 관장의 대구미술관 소장품 해설, 집안에서 함께하는 교육 프로그램, 작가와의 대화 라이브, ‘나의 예술세계’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실험했습니다. 작년에는 관람객의 능동성이 배제된 영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송출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면 올해는 가상현실(VR), 실감 콘텐츠 제작 등 한 단계 발전한 기술을 미술관 활동에 접목하고자 합니다. 대구미술관이 운영하는 채널은 홈페이지,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인데 지난해 온라인 방문객이 120만 명이 넘었습니다. 이 중 유튜브(조회 10만6637명, 콘텐츠 117건)와 인스타그램(팔로어 1만623명, 해시태그 6만9000회)이 눈에 띄게 성장했어요. 특히 유튜브 조회 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에 이어 3위를 차지하는 등 미술 저변 확대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대구미술관에 청년 관람객이 부쩍 늘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의 특징 중 하나는 ‘나는 찍는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마트폰 세대가 갖는 감성과 공유의 특징이라고 봐요. 미술관이 그런 세대들에게 핫플레이스가 된 게 분명해요. 요즘 더 기쁜 일은 전에는 외국 작가의 이국적인 그림 앞에서 인생샷들을 찍었는데 요즘은 다티스트(D’Artist) 작가로 선정된 정은주, 차규선 작가 작품 앞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생샷을 찍는 거예요. 그만큼 작품들이 좋다는 의미죠.”
▷올해 전시계획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올해는 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대구 근대미술의 뿌리를 탐색해 보는 ‘때와 땅’전이 지난 2월 시작해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시작한 다티스트 시리즈를 통해 대구 중견 작가와 원로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을 시작했습니다. 이 전시가 쌓이면 대구 작가들에 대한 아카이브가 축적돼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름 시즌에는 ‘대구포럼’을 준비했습니다. 이 전시는 대구미술관의 기획력을 보여주는 전시 형식입니다. 주제를 담는 그릇이 대구포럼이라는 큰 틀이고 이 틀을 통해 1년에 한 번씩 대구미술관 학예실이 발굴해 낸 주제를 전시로 보여주는 방식을 선보이려고 합니다. 올해가 이 전시의 원년입니다. 가을엔 대구미술관의 세계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해 굉장히 훌륭한 유럽 컬렉션인 매그파운데이션의 소장품과 대구미술관의 소장품을 함께 보여주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매그파운데이션은 2차 세계대전 후 현대미술의 정수들을 모은 재단인데, 그곳의 중요 소장품과 대구미술관 소장품을 함께 선보여 대구 작가들도 알리는 전시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대구미술관장으로서 소망이 있다면요.
“대구미술관장으로 일하는 동안 미술관이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요건인 소장품,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하는 전문 인력, 프로그램 기획 능력, 교육 프로그램, 대시민 프로그램을 탄탄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대구미술관 하면 소장품도 좋고, 전시기획은 두말할 필요 없으며, 치밀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는 기관으로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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