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김일성 북한 주석의 회고록이 국내에 출간된 것과 관련해 “경위를 파악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서 출간과 관련해 통일부로부터 반입 승인을 받은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관련법을 개정해 도서·영화의 전자파일까지 반출·반입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통일부가 정작 ‘이적 도서’가 북한으로부터 반입돼 발간될 때까지는 손을 놓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22일 김일성 회고록 출간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출판 경위 등을 파악해보면서 통일부 차원에서 취해야 할,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통일부와 사전에 협의를 하거나 출간을 목적으로 하는 반입 승인을 한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남북교류협력법은 북한과 물품 등을 반출·입할 경우 통일부 장관에게 사전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일부로부터 반입 승인을 받지 않았다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다.
앞서 출판사 민족사랑방은 지난 1일 김일성을 저자로 한 ‘세기와 더불어’를 출간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사가 담긴 이 도서는 국내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같은 내용의 책은 앞서 북한 노동당 출판사에서 1992년 4월15일 김일성의 80세 생일을 계기로 출간해 1998년까지 총 8권을 발간했다. 대법원은 2011년 8월 “북한이 대외 선전용으로 발간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등은 이적 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결하기까지 했다.
이 당국자는 “2012년 ‘남북교역’이라는 다른 단체가 특수 자료 취급 인가기관에 판매하기 목적으로 세기와 더불어를 국내에 반입하는 반입 승인을 받은 바는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발간한 민족사랑방과 남북교역과의 관련성은 부인했다.
통일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살피겠다”고 말했지만 앞선 법 개정 움직임과는 모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일부는 지난 1월 남북교류협력법상 대북 반출·입 승인을 받아야 하는 품목 대상에 전자 파일까지 추가하는 개정안을 정부입법 형태로 발의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북한으로 송출하는 라디오 방송까지 규제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자 통일부는 규제 대상에 인터넷을 통해 전달하는 영화·드라마·서적 등은 포함하기 위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인터넷망을 통해 반출되거나 반입되는 영화나 서적을 막기 위해 법 개정까지 발의했으면서 1990년대에 북한에서 발간된 이적 도서가 반입되는 것에는 손을 놓았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북한 인권단체들은 통일부가 발의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이 북한으로 정보 유포를 한층 어렵게 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을 통한 전단 살포에 이어 우회적인 수단을 통한 영화·드라마 전달까지 법적 처벌 대상이 되면 북한으로의 외부 세계 정보 유입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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