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배우·유튜버로…두번째 청춘이 시작됐다

입력 2021-04-22 17:35   수정 2021-04-23 02:09


지난 15일 서울 역삼동 맥아트홀 연습실. 패션 모델들의 워킹 연습이 한창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걷는 모습이 멋있고 활기차다. 모델들의 나이는 60대 초중반. 시니어 여성 모델들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이들은 젊은 모델 못지않은 파워 워킹으로 연습실을 활보했다. 5년 전부터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숙 씨(62)는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로 살다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며 “런웨이에 오를 때마다 긴장되지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자신감도 생겼다”고 했다.

K그랜마가 인생의 새로운 무대에 섰다. 이들은 나이의 장벽이 견고해 보이는 영역까지 용감하게 발을 내딛고 있다. 20~30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모델, 배우, 유튜버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한다. 기존 콘텐츠들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양산하며, 시장의 주요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30대만? K그랜마도 한다”
고령화 시대에 K그랜마의 활동 영역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패션·홈쇼핑 모델로 활동 중인 김정애 씨(65)는 “시니어 모델의 수요와 공급이 함께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시니어 모델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지면서 이들을 적극 활용하려는 곳이 증가했다는 것. 김씨는 “숨은 잠재력을 일깨워 모델로 활동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그와 함께 패션·홈쇼핑 모델을 하고 있는 김정희 씨(61)는 “홈쇼핑 생방송까지 하다 보니 어렵지만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나이 들면서 체형이 구부정하게 변했는데 교정도 많이 되고 표정도 밝아졌다”고 했다.

건국대 평생교육원 리얼시니어모델 최고위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김대희 교수는 “시니어 모델을 하려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2019년부터 전국 30여 개 대학에 교육 과정이 생겼다”며 “지난해 기준 9000~1만2000명 정도가 배출된 것 같다”고 추산했다.

공연계에도 K그랜마 열풍이 불고 있다. 노년층의 공연 관람이 늘면서 원로 여배우의 무대가 많아지고 있다. 박정자 씨(79) 손숙 씨(77) 등이 대표적이다.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박씨는 다음달 열리는 공연 ‘해롤드와 모드’에 오른다. 손씨는 ‘장수상회’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등 다양한 연극에 참여하고 있으며 예술의전당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일반인도 시니어극단에서 활동
일반인 중에서 연기까지 하는 K그랜마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마포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꿈의 무대’ 프로젝트 중 시니어 극단 ‘날좀보소’엔 12명의 시니어가 활동하고 있다.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이들의 대본은 형광펜 자국으로 가득했고 너덜너덜했다. 연습 과정도 치열하다. 매주 한두 차례 만나 3시간에 걸쳐 연기를 맞춰보고, 매년 한 작품씩 공연한다.

이재민 씨(69)는 “연극 무대에 오르면 일곱 살 소년의 연기를 할 수도 있고 스물일곱 살 여성이 될 수도 있다”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을 살 수 있고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변화순 씨(68)는 “체험과 몰입의 과정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나이가 들수록 그런 작업들을 활발하게 하면 더 건강하고 젊게 살 수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새 플랫폼도 거뜬히 공략
새로운 플랫폼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어 스타가 된 K그랜마도 있다. 실버 크리에이터 박막례 씨(74), ‘밀라논나’로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장명숙 씨(69)가 대표적이다. ‘계모임 메이크업’ ‘치과 들렀다 시장 갈 때 하는 메이크업’ 등 독특하고 재치있는 콘셉트로 유튜브를 시작한 박씨는 콘텐츠를 다양한 일상 이야기로 확장하고 있다. 구독자는 131만 명에 달한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였던 장씨는 유튜브를 통해 패션 관련 조언뿐 아니라 젊은 세대의 인생 상담 등도 해주고 있다. 밀라논나의 구독자는 80만 명에 이른다. 유튜브 관계자는 “시니어 크리에이터의 풍부한 경험과 연륜이 유튜브 플랫폼과 만나 젊은 세대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며 “투박하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자신만의 지혜를 담은 진솔한 콘텐츠로 재미와 용기를 선사한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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