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면 독성·고당·죽능리 일대는 용인시와 SK하이닉스가 120조여원을 들여 조성하기로 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부지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 1월 이미 착공에 들어갔어야 할 이곳은 여전히 농지와 임야로 남아 있다. 공사용 장비는 물론 공사를 알리는 표지판도 없다. 이날 죽능리에서 만난 주민 김모씨는 “땅 보러 오는 외지인들만 나타나고, 건설장비 등은 본 적이 없다”며 “토지보상이 안 됐는데 어떻게 공사에 들어가겠느냐”고 했다.
당초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시점을 2024년으로 잡았다. 올해 초 공사를 시작하고 내년엔 건물을 올릴 계획이었다. 이 일정은 1년씩 미뤄졌다. 이르면 2020년 초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산업단지 승인이 지난 3월 29일에야 이뤄져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수도권 공장 총량제의 예외 사례로 인정할지를 결정하는 정부 심의에만 2년이 소요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에 LH 직원과 공무원들의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원삼면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지장물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지장물이란 공공사업시행지구 안의 토지에 정착한 건물과 농작물 등 공공사업에 불필요한 물건을 말한다. 보상비 지급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이 조사가 완료돼야 공장 터를 닦을 수 있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현실적인’ 보상, 이주대책 등 일곱 가지를 SK하이닉스와 정부에 요구했다. 용인시 관계자는 “토지보상 작업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며 “지금 바로 시작한다고 해도 보상 절차가 끝나는 데까지 6개월에서 1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측은 2025년 초로 예정된 공장 가동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공사를 서두른다고 해도 일정을 맞추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토지 수용이 30%만 이뤄져도 착공 자체는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에 생산기지를 세우려면 여러 ‘허들’을 넘어야 한다. 서울과 가까운 지역에 공장을 지으려면 수도권 공장 총량제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 등 견해가 제각각인 여러 정부기관이 심의에 참여하다 보니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수도와 전기를 끌어오는 것도 문제다. 송전선과 수도관을 매설해야 하는 각 지방자치단체, 주요 도로를 관리하는 국토부의 승인을 따로 받아야 한다. 공무원 설득만 힘든 게 아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반대와 보상 요구를 넘어서야 한다.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의 경우 서안성~고덕 24㎞ 구간 송전선 설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전기를 끌어오는 데 5년이 걸렸다. SK하이닉스는 아직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들어가는 송전선과 수도관 공사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다음 단계인 토지보상도 만만찮다. 생산기지가 들어서는 토지 소유자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보상절차를 미룰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을 끌수록 보상액이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 중국 등은 허가에서 생산시설 가동까지 약 2년 소요된다.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은 부지 선정 발표에서 공장 가동까지 1년11개월, 중국 시안 1공장은 2년1개월 걸렸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 공장 설립 계약 체결 이후 1년8개월 만에 가동을 시작했다.
용인=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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