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은 혁신의 결과지만, 그다음 혁신의 방해 요인이 되기도 한다. 1970년대 일본은 혁신의 주인공이었다. TV와 라디오 같은 미국 제품의 복제품을 값싸게 만들던 소니와 파나소닉, 도시바는 기존 제품을 살짝 변형해 전 세계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소니의 ‘워크맨’이 대표적이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일본 기업의 활약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기업 아타리가 ‘퐁’으로 개척한 비디오게임 시장을 일본 회사들이 장악한 것이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파쿠맨(팩맨)’ ‘동키콩’ 등 시대를 대표한 비디오게임들이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시기다.
독점과 혁신
일본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앙집권적 기술 발전 계획에 몰두한 탓이다. 1970년대 성공의 여세를 몰아 전 세계 컴퓨팅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5세대 컴퓨터’, 즉 슈퍼컴퓨터 제작을 시도했지만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일본 정부는 새로움보다는 안정성을 택했다. 전자산업은 일본전신전화회사(NTT)와 일본전기주식회사(NEC)를 중심으로 한 하드웨어에 중점을 둔 시스템에 초점을 맞췄다. 일종의 조합주의를 고수하며 자국 통신 독점 기업의 힘을 계속해서 키워준 것이다. 이런 일본의 전략으로 한때는 첨단 이동전화 시스템 분야에서 하드웨어와 디자인은 미국을 뛰어넘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터넷이 확산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 산업은 힘을 쓰지 못했다. NTT와 NEC에 의한 이중독점 체제가 유지되는 일본 이동전화산업에서 독립 통신과 인터넷 기업은 고개를 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는 시장을 독점하는 두 회사에 방해되지 않는 정도까지만 허락됐다. 결국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의미 있는 기업은 단 한 개도 출현하지 않았다.
반독점과 혁신
같은 시기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1960~1970년대의 기술산업은 대형 회사들이 독점을 공고히 하던 시기였다. 이들은 정부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었던 탓에 일반적으로 독점기업이거나 해당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이었고, 또 때로는 국유화된 독점기업의 형태였다. 당시 미국의 기술산업계는 IBM과 AT&T 두 개 회사가 지배하고 있었다. 각국 정부는 자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독점의 지위를 보다 강하게 용인해 주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시나리오를 따르지 않았다. 미국 법무부는 1969년과 1974년 IBM과 AT&T를 각각 반독점법에 근거해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대표급 시장 육성이 경쟁우위 확보의 지름길이라 여겼던 당시 미국의 움직임은 자살행위로 여겨졌다. 하지만 반독점 소송은 향후 미국이 기술산업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IBM을 상대로 한 소송은 산업사에 한 획을 그었다. 디지털 시대의 핵심인 소프트웨어산업이 등장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당시 소프트웨어는 별도로 구매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드웨어 구매 시 함께 딸려 오는 제품이었다. 독점기업의 전형적인 ‘묶어팔기’ 행위였다. 반독점 압박이 가해지자 IBM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분리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컴퓨터 분야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변화했다. 오늘날 제한적으로 추산하더라도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수조원대 규모다.
독점의 재점화
하지만 기업 집중과 독점은 다시 시작되고 있다.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한 반독점 소송이 그 시작이다. MS는 반독점 체제 이후 최대 공룡으로 성장했다. 시장의 90%를 점유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회사를 파괴했다. 이를 지켜보던 미국과 유럽연합(EU) 모두 MS를 제소했다. 과거의 반독점 승리가 반복될 것으로 보였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MS를 해체하지 않고 합의를 통해 소송이 종결됐다. 가장 역동적이었던 미국의 반독점 프로그램이 힘을 잃자 독점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오늘날 집중화된 경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 세계 상위 1% 부자가 부의 45%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상위 100개 회사의 평균 시가총액이 하위 2000개 회사 총액의 7000배를 웃돈다. 한때 개방적이고 경쟁하던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의 기술 기업들도 소수의 거대 기업으로 집중화됐다. 역사적으로 독점의 폐해는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의 경제적 어려움과 경제 불황으로 인한 대중의 분노는 공산주의 혁명과 극우민족주의자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보이는 외국인 혐오증, 민족주의, 인종차별이 과거와 닮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디지털 경제시대는 작고 재빠른 기업의 시대인 듯 보였지만, 결국 거대함으로 수렴하는 모습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진행 중인 기업 집중 현상의 해결책을 고민하지 않으면 20세기 초반의 실수가 반복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