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화경제권' 연결망 주목해야

입력 2021-04-25 19:01   수정 2021-04-26 00:02

미·중 갈등이 장기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조 바이든 정부 들어 중국을 심각한 위협으로 지목하고, 동맹국과의 연대를 통한 ‘안보와 경제’ 통합 전략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 와중에 홍콩과 대만을 둘러싼 미·중의 수싸움이 치열하다. 중국은 정치적 공세와는 달리 홍콩의 금융허브 및 중개무역항 기능을 강화해 미국의 대(對)중국 경제제재에 대비하는 양상이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고리로 대만을 활용하고자 대만과의 관계 조정에 나섰다. 중국은 연일 군용기를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들여보내는 등 미·대만의 밀착 움직임을 경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을 축으로 홍콩, 대만, 아세안(ASEAN) 지역을 아우르는 이른바 ‘중화경제권’의 경제적 결합은 가속화하고 있다.

올 1분기 홍콩증권거래소에 전 세계의 29개 기업이 기업공개(IPO)를 진행해 총 170억5000만달러(약 19조1000억원)를 조달했다. 미국 증시에 상장했던 중국의 바이두나 비리비리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이 홍콩에도 상장했다. 중국 자본과 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 강화에 대응해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을 활용하려는 조치다.

홍콩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압박이 심해지고 미·중 갈등이 격화된 2018년 이후, 중국의 대형 증권·자산관리회사의 홍콩 상장도 잇따랐다. 2017년과 코로나19가 확산된 2000년 1~3분기를 제외하면, 2015년 이후 홍콩증시는 금액 기준으로 세계 IPO 시장에서 줄곧 1위를 지켰다. 아울러 홍콩은 아세안 국가와의 협상을 통해 2020년 10월까지 캄보디아를 제외한 아세안 9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켰다. 아세안은 홍콩에 중국 다음 가는 제2 무역상대로서, 홍콩이 중국과 이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다. 아세안 주요국 경제에서 화인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며, 이들은 이미 중국에 대한 전자기기와 부품 등의 공급과 무역·금융서비스 제공을 통해 중국제품 공급사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의 신경전에도 불구하고 중·대만 경제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2020년 대만의 총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은 홍콩을 경유하는 재수출과 중국 내 보세가공 지역에서 내수 시장에 공급된 상품을 포함하면 약 58% 수준이다. 해외 총투자의 70% 이상이 중국으로 향한다. 대체로 전자 부품과 반도체 등 산업 중간재 중심의 수출품이 중국 내에서 최종 생산 단계를 거쳐 다시 수출되거나 내수시장에 공급된다. 중국은 2012년부터 대만에서 수입하는 생산설비나 원자재에 대한 관세 면제를 통해 기술 획득 및 생산요소 결합을 촉진하고 있다. 대만은 세계 제조업 공급사슬에서 중국의 위상 제고에 기여했다. 대만 집권당의 성향이나 중·대만 관계의 군사적 긴장, 미국의 대만 정책 변화에도 중·대만 경제관계는 흔들리지 않았다. 2000년대에 대만의 대중 무역과 투자는 줄곧 증가했다. 적어도 중국-홍콩-대만이 경제적으로는 통합되는 양상이다.

중국과 홍콩은 아세안 국가와 각각의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또 중국-홍콩-대만의 무역·투자 연결망 강화를 통해 중화경제권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아세안 주요국과 대만의 경제관계 역시 돈독하다. 중국이 추진해 왔던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일대일로’ 구상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응한 외화내빈의 외교 전략이라면, 소리 없이 강화돼 온 중화경제권은 미국의 대중 경제제재와 압박을 우회할 수 있는 실질적 통로를 형성하고 있다.

한·중 경제관계의 중요성과 미국의 중국 압박 동참 여부에 민감한 한국 기업의 전략 조정에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한국이 추진해 온 ‘신남방 정책’이 단순히 동남아 지역의 시장과 자원에 초점을 맞춰서는 부족하다. 미·중의 전략 경쟁 구도에서 역할을 키우는 중화경제권의 연결망을 활용하고, 한국의 기술적 비교우위를 유지 발전시킬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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