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현장은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국내 최대 종합물류업체 판토스의 고객담당 부서엔 이달 들어 매일 수천 통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웃돈을 줄 테니 선사로부터 컨테이너 공간을 확보해달라는 화주들의 전화다. 100여 명의 직원이 하루종일 화주들의 요구를 응대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작년엔 선박이 들어오기 1주일 전에만 제품을 항만에 배송하면 됐지만 지금은 출항 일정보다 한 달 먼저 운송한다. 선박 회전율이 급감하면서 선적 일정을 잡지 못해 부산항 화물 야적장에는 ‘수출 대기’ 중인 가전제품 컨테이너가 가득하다는 설명이다.
올 들어 미국과 유럽에서 백신 접종이 확산되면서 ‘보복 소비’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화물 수요는 2억138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지난해보다 6.9% 늘어나는 반면 선복량 증가는 절반 수준인 3.4%에 그칠 전망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검역 강화로 선박 출도착 스케줄도 잇따라 지연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 항만에선 예전보다 근로자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 하역 작업도 늦어지고 있다. 미국 서안의 대표 항만인 LA항과 롱비치항 앞바다엔 가전제품과 의료장비 등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선 수십 척이 자신의 하역순서가 돌아오기까지 평균 2주가량을 대기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선박이 부족한 상황에서 선박 회전율까지 급감하다 보니 화물을 실을 공간이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기업들은 운임 급등에 더해 화물 보관료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해외 선사들의 ‘코리아 패싱’도 화물대란을 부추기는 또 다른 이유다. 국내 수출기업들은 중국에서 출발해 한국에서 남은 선적공간에 채우고 미국·유럽으로 향하는 해외 선사의 컨테이너선을 이용할 때가 많다. 문제는 중국에서 출발하는 해외 선사들이 최근 들어 대부분 만선으로 싣기 때문에 부산항을 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물건을 실으면 거리가 멀어 운임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부산항을 거치지 않는 이유다. 유럽 노선 운임도 이집트 수에즈운하 운항 중단 사고의 여파로 다시 급등하고 있다.
장기계약을 맺은 대기업이라도 스폿 물량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백신 주사기 원료인 폴리프로필렌(PP)은 최근 미국에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올초 텍사스주 한파로 PP공장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 효성화학 등 국내 업체들이 이런 기회를 활용해 PP를 미국으로 수출하려고 해도 스폿 물량을 구하기 어려워 수출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글로벌 선사들은 늘어난 물동량 해소를 위해 컨테이너선 신규 발주를 늘리고 있지만 이른 시일 내 화물대란이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수출입물류종합대응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화물대란을 해결할 뾰족한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운임에 대해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중소벤처기업부는 국내 중소기업의 신청을 받아 한 곳당 200만원 한도 내에서 해상운임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정부 및 수출 유관기관의 공동물류센터, 운임공동구매 활용 등을 통해 고운임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강경민/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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