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론적 개념이 등장한 ‘알루미늄-공기’ 전지가 과학자들의 외면을 받은 이유는 안전성과 기술 향상 측면에서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탓이 컸다. 기술 개발에 투자해도 부산물로 생성되는 수산화알루미늄을 제거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 투자비 회수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01년 영국 해군장교였던 트레버 잭슨은 알루미늄-공기 전지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실험을 했다. 자신이 개발한 알루미늄-공기 배터리를 테슬라 전기차에 장착할 경우 2400㎞까지 운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화재 위험도 없고, 에너지밀도가 높아 굳이 충전하지 않고 교체 사용하면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충전 없는 1차전지임에도 배터리 내 전력 생산량이 워낙 많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후 2010년 미국 코넬대의 화학자 린든 아처 교수는 알루미늄-공기 배터리 내 전자 이동성을 강화하는 방법을 탐색, 실용화에 한층 다가섰다. 폴 브라운 일리노이대 교수로부터 ‘알루미늄 이온의 전자 운반성이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실용성 측면에선 리튬이온 배터리에 미치지 못했다.
리튬에 도전하는 알루미늄(사진)의 역사를 이어받은 곳은 2014년 이스라엘에서 설립된 에너지 스타트업 피너지(Phinergy)다. 알루미늄-공기 배터리의 상용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는데, 새로운 촉매를 찾아내 배터리 수명 연장은 물론 재활용 가능성까지 높였다. 유지·관리 방법도 탱크에 1~2회 정도 물을 보충하는 게 고작이어서 ‘물로 가는 자동차 시대’로 표현되기도 했다.
최근 피너지는 인도 국영석유회사 IOC와 손잡고 알루미늄-공기 배터리 상용화에 나서기로 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두 배에 달하는 주행거리에다 사용 후 재활용이 충분한 만큼 본격적인 시험을 해보자는 합의다. 공기 중 산소가 물, 알루미늄과 반응할 때 나오는 전기를 구동에 사용하고, 알루미늄이 부식되면 새로운 알루미늄과 전해액을 채워 쓰자는 실험이다. 한마디로 배터리 재생과 같은 방식이어서 리튬이온 배터리를 교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술 도전 파트너로 나선 곳이 정유기업이라는 것이다. 이동수단용 연료 시장이 퇴보할 것이란 전망 아래 대체재를 찾는 방법으로 리튬에 도전하는 알루미늄의 가능성에 동참했다. 인도의 막대한 전기차 시장을 해외 기업들에 뺏기지 않겠다는 정부 의지가 반영됐다.
새로운 배터리가 성공하면 그 안에 포함되는 소재까지 장악할 수 있다. 중국이 배터리 부문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던 이유로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장의 규모는 물론 배터리 소재의 발굴·가공에 주목한 바 있다. 인도 역시 소재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배터리 전쟁보다는 ‘소재 전쟁’이 더 본질에 가까운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권용주 <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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