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하지만 개성 넘치는 한국 현대미술 작품들을 소개하는 두 전시가 눈길을 끈다. 서울대미술관의 15인 단체전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와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박현기 개인전 ‘I’m not a stone(나는 돌이 아니다)’이다.
서울대미술관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15명의 개성 넘치는 작품 7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권오상 작가가 스티로폼 등 재료 위에 사진을 붙여 만든 ‘사진 조각’들이 대표적이다. 일정한 모양을 해체해 다시 조합하면서 큐비즘(입체주의)의 느낌이 가미됐다.
권 작가는 “2차원 매체가 3차원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변하는 디테일을 부각했다”고 설명했다. 김기라 작가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형식을 차용해 코카콜라, 맥도날드, 스타벅스, 버거킹 등 다국적 기업이 생산한 공산품들을 그린 ‘20세기 현대 정물화’ 연작을 내놨다. 과잉 생산과 환경 문제 등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2004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박이소, ‘한국 팝아트의 원조’로 불리는 이동기 등 쟁쟁한 작가의 작품이 전시장 곳곳에 자리했다. 유명 현대 작가들의 재기 넘치는 작품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찾아가볼 가치가 충분하다. 전시는 오는 6월 20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는 좀 더 난해한 예술을 접할 수 있다. ‘한국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박현기(1942~2000)의 설치작품을 갤러리 측이 유족 및 관련 평론가들의 도움을 받아 재현한 작품들이다. 지하 1층 바닥에 널려 있는 돌무더기를 예술 작품으로 이해하긴 쉽지 않지만, 세계 문화계는 최근 박현기의 작품에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내년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 개최하는 ‘아방가르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전에 전시될 예정이다.
돌무더기 작품의 제목은 ‘무제’다. 중앙에는 한 무리의 돌이 촘촘하게 원을 그리고 있다. 그 가운데 천장에서 내려온 마이크가 보인다. 관람객들의 발소리를 증폭하는 장치다. 1983년 작가가 길거리를 걸으며 녹음한 소리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돌무더기와 미술 전시장, 관객들의 소리를 대비시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사실을 표현했다.
1990년 작품인 ‘만다라’ 연작 4점은 불교 도상과 포르노 영상들을 합친 뒤 다시 수십 등분해 각각 재생시킨 작품이다. 자세히 보면 마치 구더기가 들끓는 듯하지만, 멀리서 보면 종교적 도상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와 종교적인 이미지가 결합된 이 작품은 백남준의 극찬을 받았다.
박현기는 생전에 인테리어 작업으로 생계를 이었다. 작품이 거의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자재로 예술품을 만들었다가 다시 해체해 판매하곤 했다. 목재 조립 작품 ‘무제(ART)’도 1986년 인테리어 자재인 미송으로 만들었다가 부순 것을 갤러리현대가 다시 재현한 것이다. 2m 높이의 구조물 세 개는 위에서 보면 알파벳 A, R, T 모양이다. 작품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경제적 어려움 속에 인생을 마친 박현기의 예술 철학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전시는 5월 30일까지.
성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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