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의원은 “예타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법안을 발의했다”고 했으나 그 내용을 보면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재조사 요청 근거로 ‘지역 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대응 등 정책적 관점에서 타당성이 결여된 경우’라고 명시한 것이 특히 그렇다. 지금까지 숱하게 봐온 대로 ‘지역 균형발전’이란 미명 아래 정치권이 예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업의 재조사를 압박하면 정부로선 받아들이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예타는 사업비 500억원 이상이고, 재정 지원액이 300억원 이상인 사업을 조사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정작 예타가 필요한 곳에 ‘면제’를 남발해 제도 근간이 허물어지고 있다. 아동수당 등 복지사업부터 남부내륙철도, 가덕도 신공항 등 대형 사회간접자본(SOC)까지 줄줄이 예타 면제가 이뤄졌다. 이로 인해 현 정부 들어 올 2월 말까지 가덕도 신공항을 제외하고도 예타 면제 규모가 97조원에 이른다. 이명박(61조원)·박근혜(24조원) 정부 때를 합친 것보다 많다.
더 걱정되는 것은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의 예타 기준금액 상향, 지역 균형발전 사업의 경우 국가균형발전위에서의 조사 등 예타 완화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뿐만 아니라 여야는 전라선 KTX,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광주신공항 등 지역사업 예타 면제도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타 무력화 시도가 얼마나 더 기승을 부릴지 짐작조차 어렵다. 지자체에선 ‘예타 면제 순번표를 뽑아놨다’는 얘기마저 나오는 판이다.
그런 상황에서 예타에 대한 국회 심사권 보장은 지역 선심성 사업을 펴는 데 거추장스런 걸림돌을 아예 제거해 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타가 포퓰리즘에 밀려 껍데기만 남은 꼴이 돼가고 있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나랏빚을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무분별한 예타 무력화 입법을 당장 멈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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