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이 현지 생산, 현지 판매 촉발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오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판매 금지에 들어간다고 선언했을 때 미국 내에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 스스로 '일자리 파괴'를 선언했다며 날을 세웠고 자동차업계도 단기간 전환의 어려움을 앞세워 '억지 정책'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인구 4,000만명의 캘리포니아주는 2035년부터 휘발유 승용차와 픽업트럭의 신차 판매 금지를 고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구 760만명의 워싱턴주가 캘리포니아보다 5년 앞선 2030년부터 내연기관 판매를 막겠다며 주의회에 관련 법까지 통과시켰다. 자동차공장이 별로 없는 워싱턴주로선 전동화 속도를 높여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다른 지역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에너지를 공급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그리고 이런 판단에 석유회사를 비롯한 자동차기업은 9년 안에 내연기관 판매를 금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목표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동화 흐름을 부채질하는 곳은 다름 아닌 미국 연방정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60만대에 머문 미국 내 전기차 판매규모가 중국 대비 절반에 못미친다는 점을 들어 중국을 빠르게 추월하려면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친환경차 보조금 규모가 오히려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관용차부터 EV로 빠르게 바꾸고 각 주정부도 전환 동참을 촉구 중이다. 물론 판매되는 모든 전기차 보조금 지급 조건은 'Made in USA'여서 미국 내 일자리 고수도 병행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의 빠른 전동화 전환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은 복잡하기만 하다. 여전히 주력 수출 차종이 내연기관이고 미국에서 생산되는 차종도 대부분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제품이어서다. 물론 친환경으로 전환할 수 있지만 이때는 생산지역에 따라 보조금 지급 여부가 결정돼 고민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차 EV6를 미국에서 판매할 때 '한국 vs 미국' 어디서 만들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서 판단 여부는 가격경쟁력, 보조금 지급 조건, 그리고 시장 규모로 좁혀지기 마련이다.
이 가운데 가격 경쟁력은 보조금 지급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현재로선 가치 판단이 쉽지 않다. 당장 미국 내 생산 차종에 대해서만 주어지는 보조금만 가지고 미국 생산을 결정했을 때 향후 변동성은 보조금의 지속 여부다. 미국 또한 전기차에 무한정 보조금을 주지 않을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어서다. 반면 미국이 중국의 전기차 판매를 추월하기 위해 보조금을 오랜 기간 유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쉽게 보면 미국 내 전기차 보조금 지급 중단 시점을 예측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한국 생산을 하자니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해 어려울 수 있고 미국 생산을 하자니 보조금이 중단되면 일자리만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캘리포니아에 이은 워싱턴주의 내연기관 판매 금지 선언은 결국 전기차의 미국 생산을 유도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 뿐 아니라 독일과 일본 완성차기업도 친환경차의 미국 생산, 미국 판매를 준비하고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폭스바겐은 내년부터 미국에서 전기차를 직접 생산하기 위해 테네시주에 공장을 만드는 중이며 토요타 등은 주력인 하이브리드에 BEV 추가를 위한 배터리 합작사 전략을 발표했다.
그러자 현대기아차도 행보에 나섰다. 최고 경영자가 미국 공장을 방문해 현지 분위기 파악에 나선 것.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의 최근 미국 방문은 아이오닉5와 EV6의 미국 현지 생산라인 구축 상황 점검이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전략에 따라 미국 내 전기차 판매가 늘어날 수 있는 만큼 미국 현지 생산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리로선 한국 내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결국 일자리는 '국가 vs 국가'의 대결구도인 만큼 현지 생산이 기업에게는 돌파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난해 한국에서 3만대의 전기차가 판매될 때 미국은 60만대, 중국은 130만대에 도달해 시장 규모 조건도 충족하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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