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의 문인 구양수는 깊은 밤 책을 읽다 소리가 나자 동자에게 밖을 살피라고 했다. 밖으로 나간 동자는 말했다. “별과 달이 환히 빛날 뿐 사방에 인적은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 죽음을 앞둔 단원 김홍도는 노년의 비애와 허무함을 이 일화에 담아 붓을 휘둘렀다. 단원이 가을밤의 스산한 분위기를 특유의 화법으로 그려낸 생애 마지막 작품인 보물 제1393호 ‘추성부도’다.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기증한 추성부도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등 고미술품 2만1600점이 국립중앙박물관의 품에 안겼다. 이 중 국보가 16점, 보물은 46점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고미술품 중에서도 앞으로 다시 심의를 받아 지정될 만한 작품이 무수히 많다”고 평가했다.
조선시대 걸작 회화만큼이나 눈에 띄는 건 굵직한 불교 유물들이다. 삼국시대 불상인 금동보살삼존입상(국보 제134호)이 대표적이다.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는 현존 고려불화 중 천수관음보살을 그린 유일한 작품이다. 감지은니묘법연화경(국보 제234호)은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에 가장 많이 유통된 불교 경전인 법화경을 옮겨 쓴 책으로, 7권이 모두 갖춰져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국보 제235호)은 고려 말 감지에 금가루로 쓴 불교 경전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도자기 유물들도 기증품에 포함됐다. 청자 상감모란문 발우 및 접시(보물 제1039호)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발우(鉢盂), 즉 불교에서 사용하던 식기와 접시 등 유물이다. 모란과 번개무늬, 꽃모양 덩굴무늬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어 가치가 높다. 분청사기 음각 수조문 편병(보물 제1069호)은 조선시대 도자기 유물 가운데서도 최고 중 하나로 꼽힌다. 반추상적인 무늬가 일품이라는 평가다.
청동시대 생활공예품인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국보 제255호), 삼국시대 고위 귀족의 장식용 칼인 환두대도(보물 제776호)도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이다.
박진우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이번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컬렉션에 부족하던 부분들이 대부분 보완됐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