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에서 독점은 지속될 수 없어 보였다. 끊임없이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했던 넷츠케이프는 익스플로러의 등장으로 하루 아침에 자취를 감추었고, 폭발적인 유행세를 보였던 소셜 미디어의 선구자 마이스페이스는 페이스북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클릭 한 번으로 어디든 접근가능한 디지털 세상에서 독점의 전제가 되는 진입장벽은 과거의 유물로 여겨졌다. 더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 보이지 않았고, 작고 빠른 배가 성공하는 세상인 줄로만 알았다.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는 디지털 세상의 경쟁구도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인스타그램의 등장은 페이스북의 입지를 약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소셜 네트워크에 사진과 비디오 컨텐츠를 연결하여 공유하는 인스타그램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었고, 사업 시작 18개월 만에 사용자는 3000만 명을 넘었다. 인터넷 시대의 원칙에 따르면 당시 설립 8년 차인 페이스북은 강력한 도전자의 등장으로 은퇴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그저 단돈 10억 달러에 인스타그램을 인수해버렸다. 이후 페이스북은 왓츠앱을 포함해 90개 이상의 기업을 인수했다.
트러스트 형성 이후에 이들은 신생기업이었을 때 추구하던 개방성과 혼돈의 가치를 부정했다. 과거 세상에서 통하는 가치일 뿐 오늘날에는 독점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독점은 자연법칙이고, 독점기업들이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할 기회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페이팔의 창립자인 피터 틸은 ‘경쟁은 패배자를 위한 것’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소책자에서 그는 경쟁을 역사의 유물이라 부르며, 비즈니스가 생존을 위한 매일의 투쟁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요인은 독점수익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대헌장, 미국의 헌법, 유럽의 리스본조약, 유엔헌장 모두 힘은 특정주체에게 집중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에 근거한다. 힘은 재분배되고, 분권화되고, 견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에 권력은 공적영역의 것이었기에 정부독재만을 우려했지만, 21세기에는 공적권력에 비견할만한 사적권력의 집중을 견제해야 한다. 1, 2차 세계대전으로 표현된 공적권력의 전지구적 독점시도는 실패한 반면,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집중된 기업의 출현은 가능하다. 그리고 이들이 가진 개인정보, 공적권력과의 연계 가능성을 고려해본다면 경제를 넘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적이다. 혁신의 결과물이 인류번영에 쓰이기 위해 독점이 아닌 더 넓은 생태계를 지향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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