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올해 변호사시험(변시) 합격자 수를 ‘1706명’으로 발표한 것을 계기로 변호사업계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변호사업계에선 “신규 변호사 수를 지금보다 크게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로스쿨 측은 “합격자 수를 늘리는 게 로스쿨 도입 취지에 맞다”며 팽팽히 맞서는 모습이다.
변호사를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는 “새내기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 프로그램의 규모를 줄이겠다”며 일전불사(一戰不辭)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변시 도입 후 10년째 이어져온 갈등이 올 들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이 같은 법조시장 내홍은 법무부가 올해 변시 합격자 수를 1706명으로 지난 21일 확정하면서 불이 붙었다. 이는 지난해보다 60명가량 줄어든 수준이다. 변시 합격자는 2012년 첫 변시(1451명) 이후 매년 평균 수십 명씩 늘어오다가 처음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변호사업계와 로스쿨 양측 모두 만족시키지 못했다. 변호사업계는 변시 도입 이후 줄기차게 “연간 변시 합격자를 줄여달라”고 주장해왔고, 올해는 합격자 발표 전에 “1200명 이하로 조절해달라”고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했다. 반면 로스쿨 측 목소리를 내는 한국법학교수회는 “‘사시 낭인’의 악몽을 재현할 수 있다”며 “변시 합격자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맞섰다.
합격자 수 발표 후 변협은 “변시 합격자를 상대로 한 연수 대상자를 200명으로 줄이겠다”며 ‘실력 행사’에까지 나선 상황이다. 이를 두고도 로스쿨 측과 대한변협은 1주일째 매일 집회와 규탄 발표를 번갈아 하면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있다. 급기야 법무부까지 “변협의 연수 제한은 변호사법에 반한다”고 다툼에 가세했다.
이 같은 반목 때문에 법조계에선 “올해 ‘변호사 취업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로스쿨을 졸업한 변시 합격자들은 국회나 법원, 검찰청, 지방자치단체, 법무법인 등에서 6개월 이상 실무 교육을 받아야 변호사로 등록할 수 있다.
그러나 로스쿨 졸업생의 절반가량이 졸업 직전까지 연수 자리를 찾지 못하자 변협이 이 가운데 300~400명가량을 대상으로 매년 연수를 해왔다. 실상이 이런데도 올해는 연수 대상자 수를 대폭 줄이겠다고 선언하면서 일부 합격자가 연수를 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변협 측은 “재작년부터 정부로부터 단 한 푼의 연수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의무만 지울 뿐 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들어주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1위 편의점 브랜드인 CU의 연간 매출과 같은 수준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1위 편의점 브랜드의 점포가 1만5000개인데 국내 변호사는 두 배인 3만 명을 넘어섰다”며 “변호사가 급증하면서 ‘고소득 전문직’의 대명사로 통하던 변호사들의 수입이 편의점 점주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사례도 속출하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개업변호사들의 사건 수임건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국내 최대 지방변호사회인 서울변회에 따르면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사건 수임건수는 2016년 1.69건에서 2019년엔 1.26건으로 꺾였다. 지난해엔 코로나19 확산으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임이 급감했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법조계는 신규 변호사 배출을 둘러싼 변호사업계와 로스쿨 간 갈등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내다본다. 수도권 로스쿨 교수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재로선 변호사들과 로스쿨 측 모두를 만족시킬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며 “당국이 양측 사이에서 ‘눈치 보기’를 하며 매년 변시 합격자 숫자를 조절해 나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갈등 수습에 적극 나서지 않는 법무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로스쿨 3학년 재학생은 “현직 변호사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맞서 법무부가 해결책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수천만원의 학비를 내고도 취업 걱정을 하는 졸업생들을 보니 눈앞이 깜깜하다”고 하소연했다.
안효주/오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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