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최신 광학기술을 이용해 암세포가 이동하는 순간을 포착한 연구가 여러 과학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암세포가 발생한 원래 조직에서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혈관을 이루는 촘촘한 세포 장벽을 파고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암세포가 모양을 변형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두 가지 광학기술을 이용해 암세포가 세포막은 물론 DNA가 가득 찬 세포핵까지 물렁하게 만들어 혈관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생체역학 저널’ 최신호에 이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
연구진은 콜라겐 등 생체물질을 이용해 3차원(3D) 조직 모델을 만들고, 여기에 혈관 장벽을 구성하는 세포층을 구현했다. 그러고 난 뒤, 폐암, 유방암, 흑색종 등 전이가 잘 된다고 알려진 세 가지 유형의 암세포를 3D 혈관 조직에 배치했다.
연구진은 빛이 퍼지는 방식과 열 변동을 이용해 3차원으로 세포의 움직임과 밀도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광학기술을 사용해 암세포를 관찰했다. 그 결과 혈관 장벽을 통과할 때 폐암, 흑색종, 유방암 세포의 막이 각각 30%, 20%, 20%가량 부드러워지는 것을 확인했다. 세포핵은 32%, 21%, 25% 정도 물렁해졌다. 또 암세포가 원래 있던 조직에서 이동을 시작한 지 2~3시간 후부터 물렁해지기 시작했으며, 이 상태는 24시간 정도 유지됐다. 연구에 참여한 안야 로버츠 MIT 연구원은 “이렇게 물렁해진 세포는 하루 이상 멀리 있는 조직까지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세포막뿐만 아니라 단단한 세포핵까지 물렁해진다는 것을 밝힌 첫 연구다. 연구진은 세포가 이렇게 물렁해지는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DNA와 단백질로 구성된 염색질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로버츠 연구원은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화학요법을 찾으면 암 전이를 막을 수 있다”며 “이번 연구가 암 전이를 억제하는 신약 개발로 이어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암세포가 무작위로 전이되는 것이 아니라 원발암 조직에 따라 잘 전이되는 조직이 정해져 있다는 주장도 있다. ‘토양-씨앗’ 가설이다. 암세포 주변을 둘러싼 미세환경(토양)에 따라 암세포(씨앗)가 잘 자랄 수 있느냐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조윤경 UNIST(울산과학기술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팀은 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ACS 나노’에 발표했다. 유방암에서 떨어져나온 암세포가 간에 잘 전이되는 원인을 밝힌 것. 연구진은 작은 칩 위에 간의 구조와 기능을 모방한 ‘3D 간 유사 칩’을 이용했다. 연구진은 유방암 세포가 분비하는 나노 단위의 작은 소낭(나노 소포체)이 간의 혈관 표면에 끈끈한 물질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노 소포체가 일종의 비료 역할을 한 것이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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