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호·임종룡·이석준·김낙회·최상목 등 전직 경제관료 5명이 좌파 진영의 정책 아젠다인 기본소득을 대신할 복지 체계로 ‘부(負)의 소득세’를 제시했다. 전 국민에게 똑같은 금액을 지원하는 보편적 복지 성격의 기본소득과 달리 저소득층을 선별해 최저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보편적 복지의 공정성 논란과 분배 정의 문제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 5명은 30일 공동 발간한 《경제정책 어젠다 2022》를 통해 이 같은 복지정책 대안을 공개했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담보할 전제 조건으로 부의 소득세를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 글로벌 기준의 규제 완화, 기업 구조개혁 방안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연소득 1200만원을 기준으로 적게 벌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더 많이 벌면 세금을 내게 된다. 소득이 0원인 사람의 과세표준은 -1200만원이다. 여기에 세율 50%를 곱하면 내야 할 세금은 -600만원이다. 다시 말해 국가가 이 사람에게 600만원을 돌려주게 되는 것이다. 이 제도가 부의 소득세 또는 역(逆)소득세로 불리는 이유다.
문제는 역시 재원이다. 부의 소득세는 기본소득보다는 지급 대상과 총지급액이 적지만, 국민 상당수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막대한 돈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부의 소득세를 도입하기 위해선 최소 97조1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저자들은 재원 마련을 위해 현행 복지제도의 통폐합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각종 급여와 노인연금, 아동 수당 등 현금성 복지를 모두 없애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복지고용 분야 50조5000억원 등 지출 구조조정으로 96조6000억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주창하는 기본소득 논의에서 재원 마련 방안이 빠진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벌 구조 등 기업 형태를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재부 1차관을 맡았던 최상목 농협대 총장은 기업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면서 소유권 이전 시 발생하는 상속세를 완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저자들은 부의 소득세와 규제 완화, 기업 구조개혁을 통합해 패키지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맡았던 변양호 VIC파트너스 고문은 “좌파 진영은 의미 있는 사회 안전망을 얻고, 우파 진영은 대주주 지위를 재정립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얻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썼다.
5인의 저자는 모두 과거 재경부와 기재부에서 근무하며 경제 전문성을 쌓은 경제관료 선후배라는 인연이 있다. 행시 19회로 저자 중 선임인 변 고문이 전체적인 틀을 짜고 다른 4명이 각각의 전문성을 살려 지난 6개월간 개별 주제를 집중적으로 저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부(負)의 소득세
일정 소득 수준 이하 계층에 차등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 처음 제안했다. 최소 생계 수준을 설정하고 소득이 이에 미달하면 차액의 일정 비율을 보조금으로 준다. 세금 면제만으로는 구제할 수 없는 저소득층에 대한 일종의 소득보장 대책이다.
전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기본소득과 달리 부의 소득세는 저소득층을 선별 지원한다. 다만 소득 요건 등을 파악하기 어려워 신속한 지급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강진규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