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술 작품 하나가 '시간은 돈(Time is money)'이라는 격언을 문자 그대로 증명했습니다. 5000일 간 매일 한편씩 만든 그림을 이어붙인 작품이 거액에 팔린 것입니다. 그런데 큰 역할을 한 '시간과 노고의 산물'이 왠지 낯섭니다. 과연 큰 금액에 팔릴만한 것인지도 의문스럽습니다. 시간의 가치를 증명한 것이 예술에 의한 것인지, 기술을 통한 것인지, 진실인지 사기인지 투기인지 복잡하기만 합니다.
NFT(대체 불가 토큰·Non Fungible Token)라는 블록체인 기술로 만들어진 일종의 인증서가 미술 시장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로 다른 토큰으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해 예술 자산의 소유권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예술품에 '원본'인증을 찍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지난달 글로벌 경매업체 소더비는 'NFT아트'를 경매 대상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했습니다. 찰스 스튜어트 소더비 CEO는 CNN과 인터뷰에서 "NFT가 이미 주류 예술 경매 시장에 진입했다"며 "4월 12~14일 열린 소더비 경매에 가장 많이 등장한 것도 NFT작품"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소더비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무명 팩(Anonymus pak)의 '대체 가능한 것들의 모음(Fungible collection)'이 1683만 달러(약 188억 원)에 거래됐습니다. 이 작품은 '대체 가능하다'는 작품명과 달리 대체 불가능한 NFT기술로 만들어졌습니다. 개당 500달러짜리 큐브들로 가격이 책정되고 구매자는 큐브를 개별 구매하거나 5~1000개 패키지로 구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큐브 개수에 따라 더 많은 NFT를 낙찰받는 독특한 구조로 판매됐습니다. 총 3080명에게 2만3598개의 큐브를 판매했다고 합니다.
앞서 올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선 디지털 아트 작가 비플의 '에브리데이즈:첫 5000일'이 6025만 달러(약 673억 원)에 낙찰되며 글로벌 미술 시장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비플이 2007년부터 매일 온라인에 올린 이미지를 모아 JPG그림 파일로 만든 뒤 NFT로 발행한 '작품'이 현존 작가의 작품 낙찰 가격 중 제프 쿤스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에 이어 3위의 초고가를 기록한 것입니다. 프란시스코 고야나 윌리엄 터너 같은 미술사 교과서에 나오는 거장들의 작품보다 더 높은 가격에 '복사 가능한(?)' 디지털 정보가 거래된 것입니다.
지난달 29일에는 16년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주택가의 화재 현장에서 찍어 유명해진 '재난의 소녀' 사진의 NFT가 암호화폐인 이더리움 180이더(약 50만 달러·약 5억60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이 사진은 서구에서 각종 재난사고의 '합성짤'(인터넷 사용자들이 재미로 합성한 사진) 원본으로 자주 사용되는 유명한 사진입니다.
과거에는 제한 없이 복사 가능한 JPG그림 파일은 예술로서 가치가 없고, 누구나 특별한 비용 없이도 소유할 수 있다고 여겨졌지만 NFT를 발행하면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분명히 할 수 있고, 원본임을 인증할 수 있어 막대한 가치가 부여됐다는 설명입니다. '유일 원본'임을 증명할 수 있기에 일반 회화나 조각 작품처럼 거래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일견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합니다만, 과연 그렇게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소유권의 훼손과 분실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고가의 작품 소유권을 비트코인처럼 작은 단위로 쪼갤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그 '본질 가치'를 의심받는 처지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술계의 '암호화폐' 가치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그 가지가 영속적으로 이어질 것인지 결과가 주목됩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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