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애플은 자사주 900억달러 규모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날 구글이 자사주를 500억달러어치 매수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이다. 두 회사가 자사주 매입에 쓰는 돈은 한국 내 시가총액 2·3위인 SK하이닉스와 LG화학 두 곳의 시가총액을 합한 규모와 비슷하다. 호실적에 힘입어 그만큼 화끈한 주주환원에 나선 모양새다.
자사주 매입에 나선 건 빅테크뿐만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 중앙은행(Fed)에 의해 주주환원을 제지당했던 미국 은행들도 조금씩 자사주 매입을 재개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달 15일 25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한다고 밝혔다. 이미 JP모간은 지난해 12월 30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한 뒤 이번 분기부터 매입을 시작했다.
Fed는 지난해 6월 미국 대형 은행에 코로나19 위기 대응 차원에서 충분한 자본 확보가 필요하다며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일시 금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스트레스테스트에 통과한 은행에 한해 자사주 매입을 일부 재개할 수 있게 용인했고, 지난달 말엔 주주환원 제한을 없애겠다고 공표했다.
이 밖에 이번 실적시즌에만 록히트마틴, 브리티시페트롤리엄, 콜스(Kohl’s) 등 다양한 기업들이 실적 호조에 힘입어 자사주 매입에 나서겠다고 잇따라 발표했다.
최근 미국 시장에서 자사주 매입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S&P500 기업 중 1월 발표된 자사주 매입 규모는 430억달러였는데, 4월에는 1525억달러로 급증했다. 블룸버그는 그러면서 S&P500 기업의 대차대조표상 현금이 2조700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어 자사주 매입이 급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상당수 기업이 주주환원을 멈추고 현금을 확보했는데, 올 들어 경기 반등이 가시화되고 실적 역시 호조를 보이자 조금씩 곳간을 열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아론 스테이트스트리트 수석투자전략가는 “지난해 대비 올해 자사주 매입 규모가 30%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업들이 잇따라 자사주 매입을 발표하면서 주가에 상승 탄력이 붙을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회사가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사들이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올라 호재다. 간접적으로 주주들에게 현금을 돌려주는 효과를 낳는 셈이다. 이뿐만 아니라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여주는 효과까지 있어 시장의 평가도 좋아진다. 주식 수가 줄어들어 ROE 계산(당기순이익÷자기자본)의 분모값이 작아지기에, 기업이 적은 자기자본으로 더 많은 수익을 발생시킨다는 얘기가 된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실적이 좋아지는 회사들은 풍부해진 현금을 자사주 매입에 더 쓰려고 하고, 이에 따라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많다”며 “실적이 얼마나 좋은지와 함께 자사주 매입 여부에 따라 향후 미국 주식 간 주가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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