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파격적 채용조건 내건 속사정

입력 2021-05-03 15:00   수정 2021-05-03 16:52


국민연금공단이 최근 역대 최대 규모 채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내놔 눈길을 끌고 있다. 주로 ‘해외에 보내는 내용’을 담았다. 해외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지원하거나 국민연금과 파트너십을 맺은 글로벌 투자기관에 파견하는 내용 등이다. 전북 전주로 이전한 이후 몸값 높은 ‘베테랑’을 영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자구책으로 해석된다.
“해외 전문가로 키워준다” 당근책
3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는 지난달 말 총 54명의 기금운용역을 모집하기 위한 채용 절차에 들어갔다. 단일 채용으론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 1월 20명가량 채용한 걸 감안하면 올 상반기에만 74명의 기금운용역을 확충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역 정원(330명)의 20%를 웃도는 규모다.

‘역대급’ 채용 규모만큼이나 금융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국민연금이 새롭게 내놓은 인력양성 전략인 국민연금 윙프로그램(NPS WING’s Program)이다. 윙프로그램은 ‘세계적 수준의 투자 전문가 육성(to become World class Investor to jump into New Growth)’이란 의미를 담았다. 국민연금 직원들에게 해외연수 및 전문교육, 해외투자기관 근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국민연금의 시도 이면에는 2017년 전주 이전 이후 이어지는 구인난이 자리잡고 있다. 국민연금은 전주 이전 이후 단 한 번도 기금운용역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전주 이전이 본격화한 2016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국민연금을 떠난 운용역은 130여 명에 달한다. 기금운용역 정원이 250~300명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운용역 절반이 새 얼굴로 채워졌다.

‘베테랑’이 떠난 자리는 ‘신참’으로 채워지고 있다.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 이후 금융업계 경력이 긴 베테랑들이 자녀 교육 문제, 민간에 비해 열악한 처우 등을 이유로 지원을 꺼리면서다. 이에 최소 3년 이상 업계 경력자만을 뽑던 국민연금은 2019년부터 사실상 국민연금이 첫 직장이나 다름없는 1~2년차 신입을 ‘주임 운용역’으로 뽑고 있다. 이번 채용에서도 전체 54명 가운데 10명을 주임 운용역으로 채울 예정이다.
“지방근무·낮은 연봉 해소 급선무”
업계에선 “윙프로그램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국민연금이 내놓은 궁여지책”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국민연금 출신인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금은 곧 1000조원을 넘어서고, 해외 대체투자 등 투자 난이도 높은 자산에 대한 수요는 커지는데 시장의 베테랑들은 국민연금을 외면하는 답답한 상황”이라며 “최근엔 뽑으려고 자리를 열어둬도 지원자 수준이 내부 눈높이에 못 미쳐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두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베테랑은 오지 않고, 젊은 유망주들도 지원을 꺼리는 상황에서 해외 근무라는 ‘당근’으로 유망주라도 잡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윙프로그램은 국민연금이 직면한 구인난을 해소하는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대표는 “국민연금이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서울에 없다는 것’과 ‘연봉이 적다는 것’ 딱 두 가지”라며 “이 두 문제를 외면해선 어떤 진전도 이루기 힘들다”고 말했다.

운용역들이 얼마를 벌든 공공기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보수체계도 오랜 과제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 특성을 반영해 기금운용직과 일반직의 보수체계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을 할당받는 시스템은 변함이 없다. 국민연금과 경쟁 중인 캐나다연금(CPP)과 네덜란드공적연금(ABP)은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각 1997년과 2008년 기금운용조직을 독립공사 혹은 자회사 형태로 독립시키고 자율성을 부여했다.

한 투자기관 CIO는 “운용자산이 8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0.1%만 높아져도 8000억원”이라며 “독립공사화든 자회사든 공공기관의 경직성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이번에 채용하고자 하는 54명 중 38명은 기금의 성장세를 감안하여 편성된 증원 인력이며, 전주 이전 전후의 인력 이탈세는 이미 상당부문 완화되었다”면서, “윙프로그램은 글로벌 기금으로써의 도약을 위해 능력 있는 인재 선발 및 역량 강화를 적극 지원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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