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늑장 대처에 대한 우려와 항의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듣기 민망한 자화자찬이 아닐 수 없다. 화이자 백신 1차 접종이 일시 중단된 게 불과 며칠 전이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수급도 이달 중순께면 간당간당해져 접종현장에선 비상이 걸렸다. ‘백신 가뭄’ 탓에 접종 연기가 잇따르고, 75세 이상 고령자 상당수가 여태 1차 접종도 못 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인 것과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일상회복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대통령 발언도 국민의 화만 돋웠다.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 백신 선진국에서 ‘노마스크 콘서트’가 열리고 소비·여행 수요가 폭발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거리두기’ 연장만 거듭해 국민의 피로도가 치솟은 상황이다. “예정 접종률 70% 자체가 달성이 어려운 목표이고, 70%를 달성해도 11월 집단면역은 어렵다”는 국립중앙의료원의 공식브리핑과도 배치된다. 반도체 자동차 등 간판기업들의 활약 덕에 4월 수출 증가율이 지난 10년 새 최고치(41.1%)를 기록하며 본격화한 경기회복 불씨가 자칫 백신 차질로 꺾일 수 있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 아니던가.
백신에서 재차 확인됐지만 현실과 괴리가 큰 대통령 발언은 정권 초기부터 반복돼온 현상이다. 집값이 폭등하는데도 ‘안정됐다’고 강변했고, 부작용이 뚜렷한데도 유리한 통계만 뽑아 소득주도 성장을 밀어붙인 기억이 생생하다.
상식을 벗어난 일련의 정책 집행과정을 보고 있자면 누군가가 듣기 좋은 보고만 올리며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게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 ‘한국 경제가 가장 안정적이다’는 식의 생뚱맞은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1년 남은 임기까지 또 어떤 파장을 초래할지 알 수 없다. 경제회복의 필수 전제이자 국민 생명권이 걸린 백신 문제만이라도 확증편향과 선택적 정의를 걷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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