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소프트웨어업체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65)가 부인 멀린다 게이츠(56)와 결혼 27년 만에 이혼하기로 합의했다. 빌은 MS 지분 1.37%와 포시즌스호텔, 캐나다 국립철도 지분을 포함해 1305억달러(약 146조원)의 개인 자산을 가진 세계 4위 부자다.
두 사람은 3일(현지시간) 각자의 트위터에 올린 공동성명을 통해 “더 이상 부부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많은 생각과 노력 끝에 결혼을 끝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혼 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다만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빌과 멀린다는 최근 몇 년간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실제로 헤어질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멀린다는 2019년 한 인터뷰에서 “결혼 생활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멀린다가 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오랜 여정 끝에 이혼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2013년 멀린다가 빌에게 두 사람이 공동으로 설립한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의 연례 서한을 공동 명의로 작성하자고 제안하는 과정에서 큰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큰딸 제니퍼(25)와 로리(22), 피비(18) 등 1남2녀가 있다.
빌과 멀린다는 1987년 MS 직원 만찬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멀린다는 듀크대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하고 MS에 갓 입사한 마케팅 매니저였다. 우연히 멀린다 옆자리에 앉은 빌이 몇 달 뒤 데이트를 신청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이어졌다. 멀린다는 만찬 자리에서 빌을 수학 게임으로 이겨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회고했다. 연애 1년쯤 뒤에는 빌이 침실에 있는 칠판에 결혼의 장단점을 빼곡히 적어놓은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94년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빌은 38세, 멀린다는 29세였다.
그동안 두 사람은 세계적인 ‘모범 부부’로 평가받았다. 빌은 2000년 MS 최고경영자(CEO)에서 이사회 의장 겸 최고소프트웨어설계자로 물러난 뒤 멀린다와 함께 자선재단인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을 설립해 활동했다. 이 재단의 목표는 질병과 기아, 불평등 퇴치와 교육 확대다. 자산 규모는 510억달러로 민간 자선재단 중 세계 최대다. 빌은 2008년 재단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MS의 일상적인 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백신 개발 지원에 앞장섰다. 두 사람은 워런 버핏과 함께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기빙 플레지’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게이츠 부부는 이혼 후에도 함께 재단 활동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세계 민간 자선계에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세간의 관심은 재산 분할에 쏠리고 있다. 이들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킹카운티 지방법원에 제출한 이혼 신청서에서 “결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경에 이르렀다”며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를 합의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주법은 혼전 합의나 특별한 합의 없이 부부가 이혼할 경우 양쪽이 재산을 50 대 50의 비율로 나누도록 하고 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