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원희룡 "LH투기, 이재명은 대체 뭘 하고 있었나"

입력 2021-05-05 15:17   수정 2021-05-05 16:04


원희룡 제주지사(사진)는 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서 드러난 농지 투기의 문제는 현행법에 따라 엄정한 법 집행만 하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며 “정부·여당이 뒤늦게 대책을 내놓고 법을 고치는 건 면피용 뒷북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상과 문제점에 대해 면밀한 검토 없이 법을 고치고 규제를 남발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고 우려했다.
원 지사는 이날 제주특별자치도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주도는 제2공항 건설과 같은 대규모 SOC 사업 등을 추진해 왔지만, 농지 투기는 전혀 없었다”며 이 같이 밝혔다.
◆국민의힘 대통령 경선 출마 의지
이날 원 지사의 인터뷰는 사실상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는 “제주도가 필요한 일들에 대해선 초석을 충분히 놨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6개월동안 (대통령 후보로서) 비전을 알리고 국민과 소통하는 데 전력을 쏟아붓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겠다는 의사 표시로 받아들여졌다. 원 지사는 최근 제주도의회 본회의에서도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불출마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지난 6년간 여의도를 떠나 있었던 탓에 중앙 정치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이번 4·7 재보궐 선거 결과를 좌우한 ‘LH 사태’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 톤이 한껏 높아졌다. 원 지사는 “농지법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면 농지 소유 자체를 금지한다”며 “현행 법령에 따라 농지를 전수조사하고 농지 소유주가 농사를 짓는지 여부를 증명하지 못하면 시정 명령과 과징금 처분 등으로 대응해도 충분히 투기를 예방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현장 조사 결과 농사를 짓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면 시정명령을 내리고 그래도 조치가 되지 않으면 땅값의 20%를 과징금으로 매기는데 버텨낼 수 있냐”고 반문했다.

그는 “(제주지사 취임 직후인) 2014년 농지 투기 대책을 세우고 전수조사를 통해 엄정하게 법 집행을 했더니 제주도 전역에서 들끓던 부동산 투기가 2016년부터 눈에 띄게 안정됐다”고 설명했다. 공무원 이해충돌방지법, 전 공무원 재산 등록 등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LH 사태’ 후속 대책들이 이런 실정을 덮기 위한 전시 행정이라는 게 원 지사의 비판이다. 그는 “대규모 부동산 공급 대책이 예고되면 초등학생들도 투기가 성행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며 “그렇게 일 잘한다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냐”고 쏘아붙였다. LH 투기의 발단이 된 광명시와 시흥시가 경기도 관할이라는 것을 부각한 것이다.
◆일자리 만드는 최선책은 규제 완화
원 지사는 내년 대선의 시대적 과제를 묻는 질문엔 “일자리, 부동산, 교육 정책이 핵심”이라며 “대통령이 된다면 ‘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기존 제도를 뜯어고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6년간 제주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시장주의’를 지향하는 그의 정치 철학은 더 단단해져 있었다. 그는 ‘민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질문하자 주저 없이 “민간 기업들은 규제 완화를 가장 절실히 원한다”고 답했다. 원 지사는 “현행법상 전기자동차 충전 시설은 위험시설이라는 이유로 땅에 접지돼 있어야 한다”며 “이런 규제를 제주도에서 풀어주자 바퀴가 달려 움직일 수 있는 이동형 충전기 스타트업체가 제주도로 건너왔다”고 소개했다. 아파트나 빌딩에 주거하는 도민들도 손쉽게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어 만족도가 크다고 원 지사는 덧붙였다.

그는 “대통령, 장관이 말로만 규제 완화를 외친다고 현장에서 풀리는 건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원 지사는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넘어선 결정을 내릴 수 없고 책임이 면제되는 만큼만 일을 한다”며 “암호화폐, 블록체인 기술을 부가세 환급 등 행정에 접목하려 해도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공무원이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만 쳐다본다”고 설명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 없는 제도를 국내로 들여올려고 하지 않는 게 관료들의 생리라는 설명. 그는 “민간과 관료사회의 벽을 허물기 위해 인공지능 딥러닝 전문가를 제주시 미래전략국장으로 6년간, 복지정책의 대표적이 ‘을’인 사회복지협회장을 복지국장에 3년간 각각 기용했다”며 “처음엔 공무원의 반발이 있었지만 제주지사 재임기간동안 가장 성과가 많이 난 분야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료들의 칸막이 행정,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대통령의 리더십”이라고 했다.
◆2주택자도 실소유자 규제는 완화
원 지사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시장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강남 집값을 왜 관리하냐, 강남 집값을 낮추겠다는 목표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정책”이라며 “목표를 잘못 세우니 인체의 생태계보다 더 복잡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부동산 시장이 고장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실거주자의 경우 무주택자, 1주택, 2주택자를 가리지 않고 주거가 안정될 수 있도록 보호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최근 ‘실거주 2주택자에 대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하자 “실용주의적 관점에선 비슷한 접근”이라고 응수했다.

원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물어보자 “지지 계층이 반대하는 정책은 절대 하지 않았다”며 “유일하게 잘한 게 있다면 정책 홍보”라고 깎아내렸다. 이어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 대통령보다) 훨씬 낫다”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이라크 파병 등 지지 계층이 반대해도 국익 차원에서 결단을 내린 게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에 중앙차로와 버스준공영제를 도입한 예를 들며 “섬 특성에 맞지 않는 걸 무작정 도입한다는 비판 의견을 설득하는 데 3년이 걸렸다”며 “막상 도입되자 대중교통을 정시에 이용할 수 있고 과거 잘 다니지 않았던 버스 노선이 생겨 교통 혼잡도가 크게 낮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쉬운 정치는 없다, 필요한 경우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돌파하겠다는 결기를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론도 같은 맥락으로 접근했다. 원 지사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면서도 “전쟁이 터지면 어떤 국민이든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 이재용이라고 예외가 없다”고 비유했다. 또 “사면론에 대해 국민 지지가 많이 올라온 게 이런 측면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상 국가 차원의 반도체 전쟁이 터진 상황에서 이 부회장을 국익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좌동욱/성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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