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사진)는 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서 드러난 농지 투기의 문제는 현행법에 따라 엄정한 법 집행만 하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며 “정부·여당이 뒤늦게 대책을 내놓고 법을 고치는 건 면피용 뒷북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상과 문제점에 대해 면밀한 검토 없이 법을 고치고 규제를 남발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고 우려했다.
원 지사는 이날 제주특별자치도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주도는 제2공항 건설과 같은 대규모 SOC 사업 등을 추진해 왔지만, 농지 투기는 전혀 없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지난 6년간 여의도를 떠나 있었던 탓에 중앙 정치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이번 4·7 재보궐 선거 결과를 좌우한 ‘LH 사태’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 톤이 한껏 높아졌다. 원 지사는 “농지법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면 농지 소유 자체를 금지한다”며 “현행 법령에 따라 농지를 전수조사하고 농지 소유주가 농사를 짓는지 여부를 증명하지 못하면 시정 명령과 과징금 처분 등으로 대응해도 충분히 투기를 예방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현장 조사 결과 농사를 짓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면 시정명령을 내리고 그래도 조치가 되지 않으면 땅값의 20%를 과징금으로 매기는데 버텨낼 수 있냐”고 반문했다.
그는 “(제주지사 취임 직후인) 2014년 농지 투기 대책을 세우고 전수조사를 통해 엄정하게 법 집행을 했더니 제주도 전역에서 들끓던 부동산 투기가 2016년부터 눈에 띄게 안정됐다”고 설명했다. 공무원 이해충돌방지법, 전 공무원 재산 등록 등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LH 사태’ 후속 대책들이 이런 실정을 덮기 위한 전시 행정이라는 게 원 지사의 비판이다. 그는 “대규모 부동산 공급 대책이 예고되면 초등학생들도 투기가 성행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며 “그렇게 일 잘한다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냐”고 쏘아붙였다. LH 투기의 발단이 된 광명시와 시흥시가 경기도 관할이라는 것을 부각한 것이다.
그는 “대통령, 장관이 말로만 규제 완화를 외친다고 현장에서 풀리는 건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원 지사는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넘어선 결정을 내릴 수 없고 책임이 면제되는 만큼만 일을 한다”며 “암호화폐, 블록체인 기술을 부가세 환급 등 행정에 접목하려 해도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공무원이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만 쳐다본다”고 설명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 없는 제도를 국내로 들여올려고 하지 않는 게 관료들의 생리라는 설명. 그는 “민간과 관료사회의 벽을 허물기 위해 인공지능 딥러닝 전문가를 제주시 미래전략국장으로 6년간, 복지정책의 대표적이 ‘을’인 사회복지협회장을 복지국장에 3년간 각각 기용했다”며 “처음엔 공무원의 반발이 있었지만 제주지사 재임기간동안 가장 성과가 많이 난 분야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료들의 칸막이 행정,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대통령의 리더십”이라고 했다.
원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물어보자 “지지 계층이 반대하는 정책은 절대 하지 않았다”며 “유일하게 잘한 게 있다면 정책 홍보”라고 깎아내렸다. 이어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 대통령보다) 훨씬 낫다”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이라크 파병 등 지지 계층이 반대해도 국익 차원에서 결단을 내린 게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에 중앙차로와 버스준공영제를 도입한 예를 들며 “섬 특성에 맞지 않는 걸 무작정 도입한다는 비판 의견을 설득하는 데 3년이 걸렸다”며 “막상 도입되자 대중교통을 정시에 이용할 수 있고 과거 잘 다니지 않았던 버스 노선이 생겨 교통 혼잡도가 크게 낮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쉬운 정치는 없다, 필요한 경우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돌파하겠다는 결기를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론도 같은 맥락으로 접근했다. 원 지사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면서도 “전쟁이 터지면 어떤 국민이든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 이재용이라고 예외가 없다”고 비유했다. 또 “사면론에 대해 국민 지지가 많이 올라온 게 이런 측면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상 국가 차원의 반도체 전쟁이 터진 상황에서 이 부회장을 국익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좌동욱/성상훈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