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 장비의 말썽을 겪는 관측자는 보통 관측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관측을 많이 하면 당연히 문제를 겪을 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예전엔 6월에 관측 시간을 배정하면 하필 장마철에 시간 배정을 했다고 아주 싫어하는 관측자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몇 해는 6월 중순 이후까지 날씨가 좋았다. 거의 상반기 관측이 끝나는 6월 하순에 가야 장마 영향이 나타나곤 했다. 단기간의 짧은 통계는 아주 비과학적이지만, 열정을 갖고 열심히 관측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믿음이 있다.
천문대 건설 초창기 몇 년 동안 주변 저수지가 모두 말라버릴 정도로 극심한 봄 가뭄을 겪었는데, 이 기간에 천문대에선 맑은 날이 이어져 관측을 아주 많이 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는 가뭄이 큰 문제여서 보현산 정상의 또 다른 봉우리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비가 많이 왔다. 오래전 기억이라 실제 상황과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과학을 연구하는 관측자 입장에서는 천문대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게 아치에 맞는가 하는 생각에 봄이 되면 종종 떠오르는 기억이다. 가뭄이 끝날 즈음에 운 좋게 맞춰 지낸 기우제일 테지만 이상하게 그 이후 봄철의 천문대 관측일 수가 뚝 떨어졌다.
천문대 주변을 돌아다니면 돌탑이 참 많다. 호주나 칠레의 천문대에서는 이런 풍경을 보기가 어려운데, 여기서는 돌이 많은 곳이면 어김없이 돌탑이 놓인다. 우리만의 문화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 어디나 좋은 소망을 갖는 사람의 마음은 같을 테니 외국 천문대에서 돌탑을 보기 어려운 것은 천문대를 찾는 사람의 수가 적은 이유도 있다. 보통의 외국 천문대는 오지에 있어 접근이 쉽지 않지만, 보현산천문대에는 코로나19 영향을 받은 2020년을 빼면 연간 4만 명 이상 다녀간다. 요즘도 날씨만 좋으면 주차장에 차량이 가득 찬다. 참고로 2020년엔 6000명이 채 안 됐다.
4월 마지막 주부터 1.8m 망원경을 이용한 관측 기간인데, 처음 5일은 구름과 비만 보았다. 그러다 하루 맑아서 밤을 꼬박 새우며 신나게 관측했는데, 기상 상황이 바뀌어서 또 구름이다. 비가 올 수도 있고, 이번 관측은 이미 실패다. 그래도 1년 후를 기대하며 조금이라도 더 관측하려고 날씨가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럴 땐 혹시라도 부정(?) 탈까 봐 안 좋은 날씨를 탓하거나 낮 동안의 좋은 하늘을 보고 밤을 기대하는 설레발을 치는 것도 자제한다.
그런데 요즘은 일기 예보가 좋아져서 그냥 기상청 구름 사진만 보면 관측 가능 여부가 눈에 들어온다. 마음속 기도가 별 의미 없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항상 하고 있다. 기대는 기대한 대로 이뤄지면 더 기분 좋은 것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하루 맑은 날 돌탑과 은하수에 소원을 빌어두는 건데, 지금은 흐려서 별이 안 보여 빌 수가 없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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