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조사자료는 현 세태를 잘 보여준다. 전국 195개 4년제 대학 성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과목별 B학점 이상을 취득한 학생 비율은 87.5%에 달했다. 전년 대비 15.8%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대학 구성원들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이다. “정상적 수업이 이뤄지지 않는 마당에 코로나19 이전처럼 소위 ‘장미칼(잘 드는 장미칼처럼 깐깐하게 학점을 주는 것)’ 방식으로 성적을 평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대학들도 “학생들 불만이 큰데 학점 스트레스라도 줄여주자”는 분위기다. 연세대는 이번 학기부터 S/U평가제도를 도입했다. 다른 과 전공과목을 일정 점수 이상 받으면 S(C학점 이상)를 받는 제도다. 서울대도 교수 재량에 따라 절대평가를 할 수 있도록 했고, 서강대는 비대면 수업에 절대평가 방식을 적용했다.
학점이라는 정량평가 지표가 힘을 잃으면서 ‘깜깜이 경쟁’ 심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15학번인 취업준비생 김모씨(25)는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한다고 하는데, 학벌도 안 보고 이젠 학점도 안 보면 어떤 스펙을 갖춰야 하는지 매일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상대평가를 유지한 일부 학교 재학생과 학점에서 경쟁력을 얻어야 하는 학생들도 고민이 늘었다. 상대평가를 고수한 한 사립대 관계자는 “학교 방식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과 원망이 솔직히 두렵다”고 털어놨다. 서울대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도 “재작년에 졸업했는데 지금 학점을 받는 코로나 학번들과 학점 경쟁을 하면 불리하다”는 등의 불만이 제기됐다.
미증유의 팬데믹(대유행)에 고육지책으로 맞서는 대학들의 대응 방식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렇더라도 코로나19 창궐 후 세 학기가 지나도록 대학들에 근본적 교육 개선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 상황이 불가항력일 뿐인지는 의문이다.
‘2학기 학교수업 정상화’를 목표로 독자 방역체계 구축에 나선 서울대의 노력이 왜 더 일찍 시작되지 않았는지, 왜 다른 대학들은 코로나19 확진자 수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현 상황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지, 아쉬움이 가득하기에 하는 말이다. 그저 ‘우리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일 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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