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있는 20여 명 규모의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은 최근 고민에 빠졌다. 올 하반기 새 플랫폼을 내놓기로 했는데, 올 7월 주 52시간 근로제가 확대 시행됨에 따라 예정된 시기에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서는 모든 개발자가 매달려야 하는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면 힘들어진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신규 채용을 진행하고 있지만 워낙 개발자가 귀한 때라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7월부터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제가 확대 시행되면서 중소기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뿌리산업 등 전통적인 제조업체는 물론 IT, 소상공인 등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렇다 보니 소프트웨어 개발업계에서는 5인 미만 ‘기업 쪼개기’도 흔한 일로 알려져 있다. 주 52시간제를 적용받는 기업이 제도 적용을 받지 않는 5인 미만 기업을 새로 차려 일감을 넘겨주는 방식이다. 경기 판교의 한 IT 벤처기업 대표는 “이미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제를 적용할 때부터 IT업계에선 대·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기업 쪼개기가 성행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IT 바이오 등 수출에서 성과를 내는 중소기업이 주 52시간제로 모처럼 잡은 시장 확대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정부가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김포에서 식음료 도소매업체를 운영하는 한 사장은 “수도권 400개 중소형 슈퍼마켓 가맹점에서 수시로 주문받아 물건을 배송해야 하는데 경직된 근무시간 체계로는 모든 주문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배송차량을 늘릴 경우 수수료를 인상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전국 마트 내 생필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마트 내 창고관리 직원, 상품 진열 담당 직원, 계산원, 구매 담당자, 배송업무 담당자 등에 대한 비용 증가에 따른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경남 밀양의 금속열처리업체 A사장은 “제도 시행 전부터 주야간 교대로 주 72시간 근무하던 것을 주 48시간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며 “2교대에서 3교대로 바꿨지만 추가 인력을 못 구해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했다. 경기 화성의 한 금형업체 사장은 “중소업체 평균 마진이 3~5% 수준인데 주 52시간제로 생기는 근로자 임금 손실을 감당할 수 없다”며 “사업을 접을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경남 지역 한 자동차부품업체는 5~6명의 근로자를 모두 1인 사업자로 전환해 근무시키는 ‘편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근로자를 사업자로 전환시키면 더 이상 고용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주 52시간제와 상관없이 야근과 휴일 근무를 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여파로 외국인 근로자 공급도 막혀 중소기업 인력난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지난해 국내 중소 제조업체가 신청한 외국인 근로자(비전문취업 E-9 비자) 인원은 2만1666명이었지만 11% 수준인 2437명만 입국했다. 인천 한 제조업체 사장은 “아예 이번 기회에 근로자를 모두 내보내고 가족만 일하는 가족기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민경진/김진원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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