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차를 보지만, 여자는 옷과 핸드백을 봅니다.”
패션업계에 오래 종사한 기업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모임에 나갔을 때 타인의 무엇에 시선이 꽂히는지에 관한 그만의 ‘이론’이었다. 왜 골프웨어(골프복)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지를 그는 ‘비교’ 개념으로 풀어나갔다. 해외 여행길도 막히고, 각종 사교 모임이 원천봉쇄된 탓에 골프장이 거의 유일한 타인과의 ‘비교 공간’으로 부상했다는 설명이었다.
이 같은 흐름을 가장 먼저 간파한 곳은 골프클럽 브랜드들이다. PXG코리아와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아쿠쉬네트코리아가 한국 시장을 겨냥해 기존에 없던 의류 브랜드를 선보여 대박을 터트렸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타이틀리스트 골프웨어를 입을 수 있다면 날씬하게 몸을 관리했다는 증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이 덕분에 지난해 고가 골프웨어 시장은 스포츠 브랜드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신세계에서 가장 잘 팔린 인기 브랜드 ‘빅3’는 타이틀리스트, PXG, 마크앤로나(순서는 매출 순위와 무관)다. 현대백화점도 마찬가지다. PXG, 타이틀리스트, 제이린드버그가 가장 잘 팔렸다. 롯데백화점 역시 PXG, 타이틀리스트, 데상트가 ‘빅3’에 포함됐다.
최근 정통패션 업체들도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기 위해 혈안이다.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로 불리는 명품 브랜드들도 골프웨어 브랜드를 내놓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에르메스는 흰색 줄이 들어간 간결한 디자인의 빨간색 골프 카디건을 선보이기도 했다.
코오롱FnC는 지난해 ‘지포어’라는 미국 브랜드를 수입해 시쳇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등 서울 주요 백화점에서 시범 매장을 연 결과 한 달 매출이 5억원에 육박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타이틀리스트어패럴 등 소위 잘나가는 브랜드들도 한 달 매출이 3억원을 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포어의 성공은 타이틀리스트, PXG 등 골프장비 업체들이 만든 기능성 골프웨어가 아니라 ‘순수’ 캐주얼 의류가 내놓은 골프복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섬 창업자인 정재봉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회장이 만든 사우스케이프도 여성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는 신규 골프 브랜드다. LG패션 출신 배슬기 에이엠씨알 대표가 지난해 4월 선보인 어메이징 크리, 일본 직수입 브랜드인 어뉴 등도 지포어와 함께 신예로 떠오르고 있다.
닥스, 헤지스 등을 운영하는 LF는 닥스골프에 대한 전면 리뉴얼 작업을 단행했다. 로고도 새로 만들었다. 영국 본사가 글로벌 최초로 한국에서 이 로고를 사용하도록 허가했다. 여전히 5060세대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빈폴골프는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웨어의 성장은 숫자로도 가늠해볼 수 있다. 레저산업연구소는 올해 골프웨어 시장 규모가 작년보다 약 10% 성장한 5조6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고가 골프웨어의 성장세가 뚜렷하다.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등 ‘빅3’가 지난해 판매한 골프웨어 매출은 약 9000억원 규모였다. 올해는 1조원을 훌쩍 넘길 것이란 전망이다.
1위 백화점인 롯데만 해도 올 1분기 전체 매출에서 골프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2.8%로 전년 같은 기간(2.3%)보다 0.5%포인트 늘어났다. 금액으로 치면 수백억원 규모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의류와 신발 등을 포함해 아웃도어 전체 매출 비중이 대략 5%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골프복의 성장세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 역시 올 1분기 골프웨어 매출이 전년 대비 각각 82.9%, 92.5% 증가했다.
박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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