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윤석헌 금감원장이 남긴 '화이부동'의 뜻은? [이호기의 금융형통]

입력 2021-05-08 19:00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7일 3년 임기를 마치고 공식 퇴임했습니다. 윤 원장이 재임했던 지난 3년은 그야말로 금융권에선 '격동의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윤 원장은 교수 출신으로 임기 초부터 자신의 평소 소신을 마음껏(?) 펼쳐보이며 동시에 금융사들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지요.

이런 내용은 윤 원장의 이임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윤 원장은 자신의 성과를 되짚어가며 "보험권의 즉시연금 문제를 필두로 2018년 7월에는 금융감독 혁신과제를 발표했고 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둘러싼 분식회계 문제를 처리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암보험 분쟁 해결 추진 등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중에 금융소비자보호처를 확대 개편했고 금융소비자보호법 입법 및 시행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윤 원장이 언급한 보험권 즉시연금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암보험 분쟁 등은 모두 윤 원장 입장에선 성과일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관련 소송 등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당사자들 간 갈등과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도 지난 3월 전격 시행된 이후 영업 현장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는 등 법 취지가 상당 부분 퇴색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학자 출신으로 소신 앞세우다 여기저기서 갈등과 혼란 빚기도
윤 원장의 재임 기간을 빛낸(?) 가장 큰 이슈로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빼놓을 수 없겠죠. 윤 원장도 이임사에서 "DLF(파생결합펀드) 사태로부터 시작해 라임과 옵티머스 등 금융 사고가 연발하면서 큰 소비자 피해를 초래했지만 임직원들의 성실한 대응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사모펀드 사태는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감독 실패 책임을 금감원에게만 묻기에 애매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라임·옵티머스 수사 과정에서 금감원 전현직 간부들이 범죄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난 만큼 "임직원들의 성실한 대응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윤 원장의 인식은 일반 국민 정서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금감원은 심지어 DLF나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금융사 및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일제히 중징계를 내렸고 이들은 이례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윤 원장에게 정면으로 맞섰지요. 실제 지난해 금감원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 건수만 모두 77건에 달해 윤 원장이 부임하던 첫해(18건)보다 4배 이상으로 급증했습니다.
"군자는 화이부동, 소인은 동이불화...앞으로 '소통과 화합' 해달라"
감독당국 앞에선 항상 '고양이 앞에 선 쥐' 마냥 고분고분하던 금융사들이 이처럼 맞불 소송으로 대응하면서 금감원의 위신은 크게 실추될 수밖에 없었고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더욱 곤란한 지경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지요.

이런 사정 탓일까요. 윤 원장은 이임사에서 임직원들에 대한 당부 말씀도 잊지 않았는데요. 그는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논어 자로편의 한 구절을 인용한 뒤 "금감원이 지향하는 보다 큰 가치를 위해 소통하고 화합하는 군자의 길을 걷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화이부동이란 뜻을 함께 하지 않더라도 화목할 수 있는 군자의 덕목을 말합니다. 반대로 소인은 뜻을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화목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이어 이임식을 마치고 나오는 윤 원장에게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그는 "(출입기자) 여러분들과 소통을 좀더 많이 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답했지요.

재임 기간 내내 소신을 앞세워 나름의 개혁을 추진했고 일정 부분 성과도 냈지만 소통과 화합, 즉 화이부동의 경지엔 도달하지 못했던 윤 원장의 아쉬움과 자책을 후임 원장께서 가슴 깊이 새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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