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TV 보도자료를 잘 보시면, 제품명에 TV라는 말이 없어요."
최근 삼성전자의 한 고위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TV인데 왜 제품명에 TV가 없지?' 의아한 마음에 가장 최근 받은 보도자료를 열어보니 제품명에 정말 TV가 없었다. '네오(NEO) QLED', '마이크로LED' '더 프레임' 등이었다. 제품 특징을 설명할 때만 TV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예전에도 그랬을까? 삼성 TV를 세계 1위로 올려놓은 히트작인 '보르도 TV' 보도자료를 삼성전자 뉴스룸에서 찾아봤다. '2007년형 보르도 LCD TV 출시'라는 제목으로 나온 자료에서는 제품명과 설명에 모두 TV가 포함됐다. 2017년 QLED TV 출시 자료에도 제품명에 TV가 들어간 것을 보면 최근까지도 삼성전자는 TV라는 단어를 제품 이름에서 빼놓지 않았다.
변화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선보인 라이프스타일 TV에서 처음 일어났다. '더 테라스' '더 프레임' '더 월' 등 이름으로 출시된 것. 삼성전자는 당시 TV의 영역을 거실에서 야외, 안방 등으로 넓히면서 이런 전략을 취했다. TV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공간이 거실로 제한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본격적으로 삼성전자 TV 전 제품명에서 TV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올해 들어서다. 라이프스타일 TV 뿐 아니라 주력 제품인 네오 QLED와 마이크로LED 제품명에도 TV가 없다. 분명 TV인데 TV가 아닌 셈이다.
그 이유를 '스크린 포 올' 비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초 '삼성 퍼스트룩 2021' 행사에서 소개한 미래 디스플레이 비전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존 TV 패러다임을 넘어 스크린으로 개념을 넓혔다"며 "거실에서만 TV를 보며 채널을 일방적으로 소비하기만 하는 시대는 끝나고 있다"고 말했다.
스크린 포 올 비전은 시청공간의 확장에 더해 각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과 접근성, 환경 영향까지 고려한 디스플레이 전략을 담고 있다.
스크린은 그 영역이 무한하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기존 벽에 붙어있던 네모 형태가 아닌 어떤 형태든 될 수 있다. 마이크로LED가 대표적이다. 모듈 형태이기 때문에 십자가 모양, 계단식 모양 등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화면 크기가 작아질 수록 제작이 까다롭다. 같은 화면 안에 더 작은 마이크로LED칩을 더 촘촘히 탑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판매 중인 110인치 기준 제품 가격이 1억7000만원에 달하는 등 높은 가격대도 한계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기술 수준을 높이고, 수율을 높여 적정한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집 벽면 전체가 스크린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마이크로LED가 궤도에 오르면 소비자가 원하는 크기와 원하는 모양으로 스크린을 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변화로 삼성전자는 TV가 생활 플랫폼이 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전처럼 TV로 영상 시청만 하는 게 아니라 홈 트레이닝을 하고, 친구들과 화상대화를 나누는 등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집에 있는 전자기기들을 TV에 연결해 관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앞으로는 장보기, 일정관리 등 화면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해질 것으로 회사 측은 내다보고 있다.
'시청자'의 범위도 넓어졌다. 시각·청각 장애를 가진 시청자들도 TV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네오 QLED와 QLED에는 △콘텐츠 자막의 위치를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자막 이동’ 기능 △뉴스에 나오는 수어 화면을 AI가 자동으로 인식해 확대해주는 ‘수어 확대’ 기능 △스피커와 헤드폰 두 곳으로 동시에 사운드가 출력돼 일반인과 저청력 장애인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다중 출력 오디오 기능’ 등이 새로 적용됐다. 회사 관계자는 "앞으로 더 많은 접근성 기능을 추가해 대부분의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스크린을 내놓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런 TV를 더이상 TV라고 부를 수 있을지 회사 관계자는 되물었다. PC와 태블릿, 스마트폰 등 지금까지 나온 스마트기기를 아우르는 어떤 것. 어떤 모양이든 될 수 있고 어디에든 설치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화면. 삼성전자가 내다보는 미래 스크린은 이런 것이 아닐까.
이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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